나를 새로이, 덧칠

제주도가 하와이를 덮다

by 최지훈

하와이는 끔찍했다.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다. 마가 낀 게 아닌가 싶은 사건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마냥 행복하고 마냥 즐거워야할 신혼여행 내내, 우리 부부의 감정은 난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처럼 요동쳤다.

스냅 사진을 찍는 이튿날 아침이었다.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을 골라 사진을 촬영하는 사이, 공원 돌담 위에 무심코 놓아둔 손가방을 누군가가 훔쳐 달아났다. 손가방에는 환전해온 현금 400불과 신용카드가 든 지갑, 스마트폰, 여권 등 우리의 모든 소지품이 들어 있었다. 그 바람에 하와이 경찰을 불렀고, 한국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방인의 난처한 상황을 영어로 전달해야 했으며, 우리는 땡전 한 푼 없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긴급송금’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한국에 연락을 취해 남은 일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주하와이 영사관 직원과 장모님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하와이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날 오후 호텔 건물에 주차한 렌터카가 견인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 주차했다는 이유였다. 차를 찾으러 30분 넘게 택시를 타고 가서 무려 150불의 벌금을 냈다. 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나의 잘못이 컸지만, 하와이 주차법의 박한 인심에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6박 8일 중 두 번 째 날에 이 같은 일이 잇달아 일어났으니, 남은 일정은 고될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든, 설레는 마음 한편에 줄곧 우울감이 자리했다. 특별해야할 것들이 특별해보이지 않고, 감탄스러워야할 것들이 감탄스럽지 않았다. 물론 하와이는 잘못이 없다. 내 마음에 이는 감동의 크기가 작았을 뿐이다. 하와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와이키키 해변의 석양을 떠올리며 행복한 추억에 잠기기 마련이라는데, 우리의 추억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하와이,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도둑맞은 지갑과 견인된 렌터카였으니까. 결국 하와이에서 보내는 여섯 밤이 지나고, 우리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신혼여행지로 추천해 마지않는 하와이를, 우리는 그다지 좋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남자치고 꽤 일찍 결혼했다. 25살이 된 해 12월에 식을 올리고, 이듬해 2월 말에 학사장교 후보생으로 입영했다. 결혼하고 입대 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2달. 훈련 기간이 3달이어서, 결혼 후에 붙어있을 시간보다 떨어져있을 시간이 더 길 터였다. 짧지만 긴 이별을 앞두고 해외로 송별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덧 1월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해외로는 도저히 갈 수 없을 듯하여, 아쉽게 나마 국내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국내여행을 선호하지 않았다. 국내여행의 매력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여행이라 부르려면 모름지기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국내여행지는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화폐도 똑같고, 언어도 똑같고, 음식도 비슷비슷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별 다를 게 없지 않나. 궁리 끝에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아무리 국내여행이라도 이왕이면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해외여행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결정된 여행지가, 제주도다.

문제는, 하와이에서 속된 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우리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제주도는 ‘한국판 하와이’라 불린다. 쭉 뻗은 도로 양 옆으로 줄 지어 선 수목들, 변덕스러운 날씨, 섬 전체가 뿜어내는 분위기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보낸 신혼여행의 추억이 퍽 좋지 못했으므로, 혹시 제주도 여행도 그렇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제주도는 달콤했다. 이 단어 말고는 제주도 여행을 표현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달콤했다’는 서술어를 뒷받침하는 하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은 넘치는 환대이고, 둘은 제주도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바람의 아름다움이며, 셋은 다시금 재확인한 서로에 대한 확신과 사랑이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제주도는 실로 ‘달빛을 머금은 꿀’ 같은 섬이었다.

제주도 여행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두 군데, 게스트하우스와 김영갑갤러리다. 첫 날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성대히 환영해주었다. 부산에 살다 제주도에 오신 분이라 말투에 사투리가 묻어났다. 그것이 그렇게 구수하고 좋았다.

“여가 이름이 ‘웰빙’ 게스트하우스 아입니까? 내일 아침 메뉴는 웰빙, 그 이름에 맞춰가 쌈밥하고 생선이라예. 제가 다 요리할 테니까 편하게 주무시고 내일 아침식사 드실 때 봅시데이.”

가격이 저렴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여느 스위트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숙소 환경이 훌륭했다. 방의 적당한 온도와 습도, 양키 캔들의 향, 침대 시트와 이불잇과 베갯잇에 은은히 퍼지는 냄새. 거기에다 다음 날 먹은 아침은 단연 일품이었다. 자글자글한 갈치구이와 고등어구이, 그리고 푸릇푸릇한 배추. 갈치의 은빛 살과 고등어의 푸른 등살 한 점을 쌈 싸 먹었을 때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한데 어울려 연주하는 것처럼 맛이 조화로웠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식탁에 내놓는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함과 여유’는 따뜻하고 평안했다. 모두 추가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대접해준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발길을 돌린 곳은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갤러리다. 제주 서귀포시 남부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북서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예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갤러리 하나가 나온다. 제주의 바람에 홀려 제주에 정착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눈에 보이는 사진에 담아내고자 평생을 바친, 바람에 미쳐 살다 끝내 바람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 故 김영갑 님이 남긴 작품이 두모악에 위치한 ‘김영갑갤러리’에 전시되어있다.

“제주도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꼭꼭 숨어 있는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 보고 느낄 뿐이다.”

그는 제주의 바람에 미쳤다. 제주의 속살을 이해하기 위해 바람에 몰두한 그의 장인정신에 자연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제주의 속살, 제주의 아름다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는 보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그가 쓴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내게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하와이 여행과 비로소 화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얼마나 삽시간의 황홀을 놓치면서 여행했나. 돌이켜보니 우리의 신혼여행은 기대하고 바란 대로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순간은 분명, 삽시간의 황홀이었다. 지갑 분실의 책임을 미루기 딱 좋은 상황임에도 아내와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고, 가진 걸 다 잃었어도 서로를 잃지 않아 다행이라고 고백하였으며, 와이키키 해변의 지는 석양을 아름답게 추억하진 못할지라도 우리가 어디에 있든 떠오르는 태양을 함께 바라보자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하와이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 너머에 우리 부부의 사랑이 견고히 서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는, 하와이 여행의 낡고 어두운 기억을 새롭고 밝은 기억으로 덧칠해주었다. 하와이에서 나는, 돈 없이 여행하느라 컵라면이나 먹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고 있는 이들과 비교했다. 참으로 비참하게도. 그땐 돈이 여행에 필요한 절대 요소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아주머니의 넉넉함에 감사하게 되었다. 재료 준비며, 새벽부터 일어나서 요리하는 정성이며, 돈 한 푼 쥐어드리지 않았는데도 값없이 퍼주는 너그러움이란 쉬이 받을 수 없는 선의였다. 뿐만 아니라 故 김영갑 님처럼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도 배웠다. 도둑을 맞았든 견인이 됐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보고 느끼는 삽시간의 황홀이었다. 서로에게 더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어떤 여행이라도, 그것이 심지어 모든 걸 잃어버린 여행이라 할지라도 틀린 여행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내여행에 대한 나의 선입관을 깨부수어 준 것은 덤이다.

현재의 여행은 과거의 여행을 새로이 한다. 그 날의 기억을 오리고 붙이고 잘라내고 덧댄다. 하여 과거의 여행은 또 하나의 여행으로 다시 태어난다. 여행의 부활이다. 여행의 부활은 나 자신의 부활이기도 하다. 여행을 새로이 함으로써 나도 새로워진다. 다음 여행은 과연 어떻게 지금의 나를 새로이 할지 기대된다. 그것이 어떤 여행이든 간에 삽시간의 황홀을 맛보기 위해, 여행의 속살을 느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아 보이나 결국엔 ‘새로운 나’라는 한 점에서 만나게 될 나의 무수한 여행들이여.

기다려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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