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의 넋을 기리며
“낯설고 물선 이국땅이나 만주 골짜기 혹은 황량한 연해주 벌판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독립운동가, 그들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독립이라는 무거운 사명을 지고 한 걸음 내디뎠을 때, 처자식의 웃음소리와 따스한 품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아간 한 명 한 명이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2019년의 대한민국이다.
하여 그들의 마음을 십분 헤아려서, 그 날의 편지를 써보려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해야만 했던 가족에 대한 애정, 그 애정을 담아 달빛 아래에서 한 자 한 자 내려썼을 애달픈 그리움, 한반도 땅에서 태극기를 펄럭이기 위해 생을 던진 선배의 마음을 감히 담아보리라. 이 편지는 선배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이다.
「여보시오, 잘 지내고 있소?
나는 지금 만주 벌판에서 막 내려와 글을 쓰는 길이오.
달빛이 어스름하니 새벽 세 시쯤 된 것 같고.
아들놈은 잘 있소? 내 떠날 때는 핏덩이였는데 이제 걷기도 하고 말도 하고 있을지 모르겠구려.
시간이 그리도 흘렀소. 자그마치 5년이란 세월이.
나는 잘 지내오. 이곳 상황은 퍽 긍정적이오. 조국의 많은 사람들이 틈틈이 독립자금을 보내오고 있소.
국토가 일제에 빼앗겼지만 우리의 정신은 결단코 빼앗기지 않았소. 보란 듯이 펄펄 살아있는 것이오. 곧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날에는 당신도, 우리 아들놈도 대한민국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닐 수 있는 것이오.
그런 생각을 가끔 하오.
밥 한 끼 엉덩이 붙이고 여유 있게 먹지도 못하고, 처와 자식을 떼어놓고 또 그들을 걱정시키고... 내 삶이 옳다 할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리 살고 있는가? 조금만 굽히면, 조금만 자존심을 버리면, 멀리 보지 않고 한 치 앞만 보고 살면 당신도 아들놈도 나도, 비겁하다고 욕은 조금 들을지언정 아주 떵떵거리며 살게 아닌가 하고 말이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더이다. 1919 기미년 3월 1일에 울려 퍼진 선배들의 외침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고, 1920년부터 우리가 죽지 않았음을 몸소 보여준 무장투쟁가들의 저력과 해외 각국 각처에서 일어난 외교독립운동의 파도가 나를 밀어냈으며,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소.
한 번 사는 인생 가치 있게 살다 가치 있게 죽고 싶은 나의 염원이, 나 하나 죽더라도 처와 자식은 자유로운 대한민국 땅에 살게 해야겠다는 다짐이, 지금 여기 차가운 땅 충칭까지 나를 이끌었소.
꿈을 꾸어보오. 전국 광장에서 온 국민이 태극기를 등에 들쳐 메고 애국가를 부르는 꿈. 그 꿈이 당신의 꿈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우리가 같은 꿈을 꾸고 지내다 보면 이 땅에서 닿지 못하는 연이라 할지라도 하늘에서는 언젠가 닿지 않겠소?
많이 보고 싶소. 몸 건강 잘 챙기시오. 이만 줄이오. 나는 또 새벽 회동이 있어 가봐야겠소. 답장을 받아볼 수 있을진 모르겠소. 내 써준 주소로 보내시오. 기별하겠소.」
「당신을 달빛에 그리며 답장을 써요. 여보, 나는 잘 있어요. 아들도 잘 있고요.
아들은 아바이를 닮아 용감하고 튼튼하답니다.
말도 제법 하고 이제는 걷는 걸 넘어 뛰어다니기까지 해요. 당신과 달리기 시합하고 싶다고 보채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아바이는 어디 있는지, 언제야 올 것인지 묻습디다.
밤마다 눈가에 달빛을 적시면서 당신 생각을 해요.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편히 자는지,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따뜻한 흰쌀밥에 고깃국 차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이 편지에 마음만 담아 보냅니다 그려.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여기도 다 그리 생각하고. 옆집 김 씨네도, 앞집 이 씨네도 칭찬일색이에요. 최 형은 어찌 그리도 용감하냐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우리도 임시정부 소식을 간간히 듣고 있어요. 지난번에 들으니 충칭으로 소재지를 옮겼다고 하더군요. 어찌 거기는 좀 지낼만한가요? 우리 걱정은 말고 대의에 힘쓰세요. 그게 나를 위하고 아들을 위하고 종국에는 당신을 위한 길일 터이니.
나도 꿈을 꾸고 있을게요. 우리가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서. 광장, 태극기, 애국가. 매일 태극기를 보며 기도하는 것이 있어요. 당신이 일본 식민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반도 땅을 밟는 날이 속히 와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우리에게 달려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그 날이 오면 우리 셋이서 달리기 시합을 꼭 합시다. 당신 소원대로 태극기를 등에 들쳐 메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온 동네를 누벼요. 그리고 시합이 끝나면 애국가를 부르는 거예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조국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간 선배들. 그들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후손의 자유와 영광과 맞바꿨다. 그들은 그저 빛이었다. 밤하늘을 비추는 별과 같은 사람이었다.
이제는 하늘에서, 그리도 보고 싶었을 가족과 함께 편히 쉬기를 기도한다. 애국가가 크게 퍼져 울리고 있을 그곳, 당신의 꿈이 이루어진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