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니 새싹이 돋는다

청춘의 밤에서

by 최지훈

오랜만에 대학 동기와 연락이 닿았다. 카톡에 뜬 생일 알림 덕분이다. 스마트한 시대에 살다 보니 생일도 스마트하게 알려준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꽤 서먹할 사이에게 자연스레 연락할 구실이 생겼으니 좋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일이 바빠서, 시험공부에 매진하느라 같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연락을 미뤄왔다.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먼저 연락할 성격은 못 되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절대 이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이것은 언제 밥 한 번 먹자, 와 같은 기한 없는 약속을 하는 관계보다 더 중대하고 심각한 관계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서로 연락하지 않는 나와 그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근거였고, 억지로 연락했다가 괜히 서로의 삶에 방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소심한 염려 때문에 몇 일이고 몇 달이고 왕래가 없었던 것이다.

“이야, 오랜만이다야, 생일 축하한다. 니 잘 사나? 연락 한 번 하기가 어렵다이.”

연락이 없었던 것을 살짝 그의 탓으로 돌리며 나는 어색하게 말문을 뗐다.

“와, 행님. 감사합니다.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요. 전 바쁘게 살고 있죠. 햄도 잘 지내죠? 어째 살고 있어요?”

“내도 잘 지내지. 일하면서 놀면서. 근데 우리 새내기 때 기억나나? 진짜 마이 놀았다이가. 그때만큼 재밌는지는 모르겠다. 옛날에는 뭘 몰라서 재밌었던 건가. 지금은 너무 많이 알고 익숙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바야흐로 6년 전이다. 우리는 새터에서 만났다. 마음 잘 맞는 형 동생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수업을 듣고 일주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우리는 자주 고기를 굽고, 자주 술을 마시면서 청춘의 밤을 지새웠다.

새터에서 같은 방이었던 멤버의 80%가 지방 출신이었고 대구, 부산, 울산, 창원이 그중 90%, 공교롭게 다 경상도 출신이었다. 우리 둘도 경상도 출신이다. 타지에서 외로이 생활하는 타향살이였으므로 기숙사에서, 자취방에서, 밤 12시가 넘어도 마음만 맞는다 싶으면 우리는 자주 만났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연애, 학교 수업, 교수, 동아리, 과 학회에서 만난 선배, 서울의 유흥거리를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무용한 것으로 웃고 떠들던 나날이었다.


아, 나는 이때만 해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술과 유흥을 좋아하는 밤의 사나이였다. 기회가 되면 내가 사랑했던 밤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놓겠다.

진탕 마시다 보면 새벽이 왔다. 우리는 하늘에 떠오른 별빛 아래에서 쓰린 배를 부여잡고 각자의 침대로 얼굴을 파묻었다. 다음날 수업 시간이 가까워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다시 모이는 우리였다. 피곤에 절어 수업에 들어가긴 했지만 전공책을 펼쳐 놓는 것만으로도 교수님에게 보일 예의는 다 갖추었다, 는 나름대로의 양심은 있었다.

그렇게 어른 흉내나 내던 어설픈 고등학교 조무래기들이 대학생으로 탈바꿈하는 과도기적 전환을 우리는 시나브로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찾았던 모교 캠퍼스의 풍경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상전벽해, 건물은 훨씬 세련되고 깔끔해졌다. 화장실에서 절대로 맡아볼 수 없었던 양키캔들 미드나잇 라잇 같은 향기가 나며, 항상 오줌이 묻어있어 곳곳이 노랗던 변기는 매직블록으로 닦은 듯 새하얘져 있었다.

그것은 실로 낯선 풍경이었다. 대학가의 활기찬 젊음은 여전히 그대로 그 자리에서 생동하고 있는데, 오히려 더 밝아졌는데 나와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늙어버렸다. 우리는 벌써 조상님이라 불리는 학번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와 청춘의 일부를 함께한 그 녀석 생일 덕에 대학 시절에 흠뻑 빠진 하루였다. 지나가다 무심코 본 문장이 계속해서 뇌리에 남는다.


“낙엽이 지고 새싹이 돋는다”


한 글자를 바꾸니, 좀 더 의미가 와닿는다.


낙엽이 지니 새싹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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