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별은 반짝이고 있다
"신랑은 어떠한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신부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지켜줄 것을, 진심으로 맹세합니까?"
"네!"
"신부 또한 맹세합니까?"
"네!"
결혼식 서약의 시간이었다. '25살'의 나와 아내는 주례 선생님의 질문에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단 몇 초의 서약으로 공식적인 부부가 됐다. 많은 사람의 박수와 축복을 받으며 굳게 약속했다. 어떠한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지켜줄 것을. 그리고 정확히 72일 뒤, 나는 군대에 들어갔다. 그 날에 한 맹세와 약속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군미필이었다. 12월에 결혼하고 2월에 장교후보생으로 입대하는 기구한 운명. 얼마 되지 않는 신혼 2개월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제주도 3박 4일 여행, 천안 카페 투어, 청주 카페 투어, 강원도 스파 여행. 행복했기 때문일까.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남편의 세상과 아내의 세상, 두 세상이 만나 서로 섞여 한 세상이 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결혼 생활에 '3개월'이라는 공백이 생겨버렸다. 학사장교 훈련 기간이 자그마치 13주였기 때문이다. 막상 입대할 때가 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별에 대해, 훈련에 대해, 나와 아내에게 찾아올 변화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맹세와 약속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애써 괜찮은 척하며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잘하고 올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보고 싶고, 힘들 때마다 밤하늘에 제일 빛나는 별을 바라보자. 그 별이 너와 나를 이어줄 거야."
한 세상이 한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내 세상은 오직 군대로만 채워졌다. 군대는 내게 강해지라고 요구했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매일 흙바닥에서 구르며 먼지를 마셨다. 오늘 훈련이 끝나면 또 '내일 훈련을 버틸 수 있을까'하는 막막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내가 보고 싶어도 규정상 훈련 2주 차가 지나기 전까지는 연락 한 번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몸무게가 10kg 넘게 빠졌고 턱선은 날렵해졌다. 내가 군대에서 내 세상을 채워가는 동안 아내는 아내의 세상을 살아갔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업무, 남편 없이 겪어야 하는 시부모님의 압박, 힘들어도 의지할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에 대한 서러움과 슬픔을 혼자 쓸쓸히 감당해야 했다. 알게 모르게, 두 세상의 틈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몸은 날카로워지고 강해지는데, 마음은 점점 무너져갔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건 '별'이었다. 취침 소등 시각 22시가 넘으면 남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치며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아내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우리가 힘들 때마다, 보고 싶을 때마다 보기로 약속한 그 별을 보면서 말이다. 창문 너머 보이는 무수히 많은 별들 중, 달 옆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별, 나는 그 별을 보며 기도했다. 내가 종이 위에 쓰고 있는 진심이 저 별처럼 빛나기를. 아내도 별을 보며 나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그리움을 글로 뱉어내며,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상 사이의 벌어진 틈을 조금씩 좁혀나갔다.
마침내 임관식에서, 남편의 세상과 아내의 세상이 다시 만났다. 떨어져 있는 3개월이 걸림돌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25살 미필의 결혼, 어쩌면 무모하고 섣부른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조금은 더 배워야 할 게 많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벌어질 틈을 예상치 못했고, 이별 후에 찾아올 변화에 대해 미리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별이 있었다. 어떠한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지켜줄 것을 서약하고 맹세한 그 순간의 별이 밤하늘에 늘 떠있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별은 어김없이 반짝이고 있다. 밤하늘에, 나의 가슴에, 우리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