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식, 대학 수학능력시험

자기만의 바둑

by 최지훈

11월 둘째 주 목요일.
늘 이맘때가 되면 내 수험생 시절이 생각이 난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사람이란 지나간 추억을 연료로 삼아 살아간다고 했다.
나도 오늘은 연료가 필요한가 보다.
수능 전날이 그 연료 중에서도 가장 고품질의 것이다.


고3 때 수능 전날 몸이 피곤해야 잠이 잘 온다며 안 하던 산책을 하고 농구공 몇 개 던지다 기숙사 들어온 기억.


독학 재수를 할 때 매일 쓰던 플래너를 보고 '나 이번엔 좀 열심히 했구나' 혼잣말하며 잠을 청했던 기억.


삼수 때 '아 이제 할 만큼 했다'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잠 잘 자게 해 달라 빌었던 기억.


그 당시에는 전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끝이 났다. 지금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연료가 되었다. 고3 때의 나, 재수 때의 나, 삼수 때의 나. 그리고 그렇게 수험생활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온 나.


수능은 현대판 성인식이다.
나는 그 성인식을 무려 세 번이나 치렀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각자 자기만의 바둑이 있는 거다."


난 내 바둑을 둔 것이다.


세 번의 수능을 거치면서 나는 실패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으며,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배웠다.

그리고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수능을 세 번 치면서 많은 수험생들을 보아왔다.


노력에 비해 점수가 나오지 않은 친구들.
노력에 비해 점수가 잘 나온 친구들.
원서를 잘 못 써서 자기가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배치표상 낮은 곳에 간 친구들.


이번 수능을 친 수험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어떤 특정 대학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잘 치든 못 치든 또 그에 맞게 내게 맞는 길이 열린다. 어떤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될 것이고 나처럼 아쉬워서 재수 삼수를 하게 되는 친구들도 있을 터이다. 그냥 점수 맞춰 대학 가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물론 있을 것이고.


나는 수험생 모두가 시험을 잘 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것이다. 구태여 요행을 바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각자 자기만의 성인식이니까, 자기가 한 만큼 잘 치러냈으면 좋겠다. 그냥 수능 점수 몇 점 높은 이십 대 대학생이 아니라 의식 있고 멋있는 성인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 수능을 치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는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여러분들보다 더 마음 졸이셨을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수능이 갖는 의미로 무엇이 있을까?
학벌사회를 부추기는 신분상승 도구, 현대판 과거시험, 이외에도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근데 나는 이런 의미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수능을 통해 배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묵묵히 잘 해냈으면 좋겠다.

인생을 배웠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바둑을 온전히 두고 있다는 그 사실을 믿었으면 좋겠다.


수험생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정말 수고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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