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이 다하기 전에
인간은 뭐든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인가 보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다.
“공부 좀 해라.”
좋은 대학에 가면 좋다는 걸 잘 아는데도 우리는 공부를 그렇게도 하기 싫어한다.
사람들은 수년이 지나 철이 든 후에야 후회한다.
“그때 공부 좀 더 할걸.”
“운동 좀 해라.”
운동을 꾸준히, 열심히 하면 좋다는 걸 아는데도 우리는 운동을 잘하지 않는다.
건강을 잃고 병이 들어서야 후회를 한다.
“몸 건강할 때 운동 좀 해둘걸.”
“있을 때 좀 잘해라.”
부모님이건, 배우자건 결국 인간은 죽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존재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걸 다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살 것처럼 서로를 대한다.
상대방이 떠나고 나서야, 내가 그에게 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이 더 많다는 걸 깨닫고 후회한다.
“있을 때 좀 더 잘해줄걸.”
이 어리석은 인간의 행태를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 따윈 없다고, 신이라는 건 줏대 없고 의지 약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천국과 지옥은 그저 허상적인 것일 뿐이라 말한다.
물론 천국, 지옥이 있다 없다의 수학적 확률은 각각 50%, 50%다.
하지만 나는 “있다”에 내 모든 걸 걸겠다.
설령 사후세계가 없을지언정.
왜냐고?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에 썼던 사례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범하는 것일 테니까.
공부하는 게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해두면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운동하는 게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있을 때 더 잘하는 게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신을 경배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신이란 없어! 천국, 지옥이란 없어!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나는 삼수를 하고, 공부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나는 내 몸이 만신창이가 돼가는 걸 보고 나서야, 몸 관리를 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당신께서 나에게 부탁하셨던 “한 통의 전화”를 못 해 드린 지난날을 후회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죽음 뒤에는 후회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