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식물도 모두 다른 모습인 이유 - 리틀 장미
그동안 찍은 식물 사진 중에 가장 애정이 가는 것을 고르라면 엄청 고민하면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사진을 선택하겠지만, 리틀 장미(Echeveria prolifica ‘Little Rose’)의 사진은 언제든 빼놓지 않고 고를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리틀 장미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햇빛이 있는 곳으로 길게 뻗은 꽃대 끝에 달린 노란 꽃을 본 순간, 리틀 장미에게 홀딱 마음을 뺏기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지요. 사방팔방으로 제멋대로 줄기를 뻗은 리틀 장미는 웃자란다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웃자라는 것은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이 리틀 장미를 본 후로 저에게 웃자람은 식물에게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 좋자고 모든 식물을 일부러 웃자라게 방치해 둘 수야 없지만, 어떤 웃자람은 거부할 수 없는 특별한 몸짓으로 느껴집니다.
식물들은 빛이 부족하면 햇빛을 찾아서 줄기를 길게 뻗어 올립니다. 원래의 바람직한 모양보다 잎 사이가 멀어지면서 더 길고 가늘어진 줄기는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있지 못하다는 표시입니다. 빛이 더 잘 드는 곳으로 옮겨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리틀 장미는 빛이 부족한 상황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해 쉽게 웃자랍니다. 조금이라도 빛이 부족하면 빛이 있는 곳을 찾아 사방으로 가느다란 줄기들이 뻗어 나가죠. 그 모습이 위태롭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도 합니다. 이대로 여기 주저앉아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지요. 그렇게 뻗어나간 줄기가 만들어 낸 전체 모양은, 들판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꺾어다 마음 가는 대로 꽂은 꽃다발처럼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우아하죠. 길어진 줄기 끝에서 말이 없는 식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식물이라도 똑같이 자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환경에서 살아남아 적응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외국에서 잠깐 살던 시절, 원래 그곳에 사는 친구가 키우고 있던 식물을 분갈이하여 외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나눠 준 적이 있습니다. 식물을 주는 친구도 받는 친구들도 아무도 식물의 이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서 어떤 식물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초록색 작은 잎이 주렁주렁 잘 달리는 순한 식물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과 안정감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행위였습니다. 그 풍요와 안정을 조금 나눠 받은 것 같아 화분을 나눠준 친구가 엄청 관대하게 보였지요. 친구는 자신이 나눠준 식물들의 안부를 종종 물었습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 식물들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죠. 그리고 식물들이 자라면서 지금 키우는 주인들을 닮아간다고 신기해했습니다. 제 식물은 줄기가 꼬불꼬불해지면서 옆으로 퍼져 보글보글 자라는 모양이었고 다른 친구의 식물은 줄기가 위로 쭉쭉 뻗으면서 시원시원하게 자랐습니다. 모두 한 화분에 살고 있던 똑같은 식물이었는데 말이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다른 친구에게 선물해 주고 왔는데, 꼬불꼬불했던 저의 식물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갔을지 궁금합니다.
농장에서 새로 화분에 담긴 어리고 싱싱한 식물들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누군가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식물을 보는 것에도 특별한 재미가 있습니다. 식물이 그 사람과 살면서 어떻게 적응해 왔는 지를 볼 수 있으니까요. 재미있게 본 식물책 중에 식물을 이용해 아름답게 꾸민 집과 그 주인을 소개하는 책이 있었습니다. 책 속 집안에 가득 찬 커다란 식물들은 그 공간에 맞게 키가 자라고 잎이 달리면서 줄기의 모양과 잎의 색도 바뀌어 있었습니다. 인테리어를 위해 식물을 가져다 놓았다기보다는 식물이 그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보였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의 기후, 창문과 벽, 가구 등 모든 것과 떼려야 뗼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진 생물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식물을 그렇게 오랫동안 키울 수 있다는 것도 부럽고 오직 그 공간에서 그 시간을 그 사람과 보냈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식물의 모습을 날마다 관찰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습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람직한, 예쁜 모양의 식물보다는 어딘가 이상하게 제멋대로 자라난 식물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사는 환경에 맞게 자기만의 모양새를 가지게 된 식물의 아름다움은 쉽게 설명하기 힘듭니다. 오랜 세월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처럼 이야기해 주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는 조금씩 바뀌고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 내죠. 내 식물은 나에게, 나는 내 식물에게 서로 적응해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식물을 키우는 사람 모두가 꿈꾸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리틀 장미 키우기>
리틀 장미는 이름 그대로 장미처럼 예쁜 로제트형 잎모양을 만들지만 엄청난 웃자람으로도 유명합니다. prolific(다산의, 번식력이 강한)에 어원을 둔 prolifica라는 학명은 아마도 너무 잘 자라서 붙은 이름인 듯해요. 자그마한 새끼들이 긴 줄기와 함께 계속해서 뻗어 나와서 화분이 금방 가득 찹니다. 잎꽂이나 줄기 꽂이로도 잘 자라니 솜씨가 좋은 분들이라면 웃자라더라도 금방 식구를 늘릴 수 있습니다. 마른 잎은 바로바로 떼어주어야 한대요.
빛 : 햇빛을 많이 봐야 웃자라지 않습니다.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놓고 키워주세요.
물 : 잎을 만져 봤을 때 잎이 말랑하거나 잎에 주름이 생기려고 할 때 주세요.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물이 잘 빠지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물을 너무 자주 줘도 웃자라니 조심해야 해요.
온도 : 18도에서 21도 정도의 온도에서 잘 자랍니다. 겨울에도 10도 이상인 게 좋아요.
제가 찍은 식물 사진과 식물에 대해 쓴 글을 묶은 책 '식물 사진관'은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교보문고 등등에서 구매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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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