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Jang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

by 쏘피

아름지기 기획전시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과 연계 프로그램 <식탁 위의 장 이야기>를 함께 경험했다.


전시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층에는 열 가지 장과 그 장으로 만든 음식이, 2층에는 장을 담고 나누는 도구와 용기가, 3층에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 보관 용기와 옹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장 담그기 문화’가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점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연계 프로그램에서는 온지음 레스토랑만의 발효법으로 만든 대구장을 활용한 해물떡볶이를 맛보았다. 대구장만 따로 맛보지는 않았지만 향은 춘장을 닮아 있었다. 떡볶이는 색은 옅었지만 감칠맛이 풍부했고, 낙지와 홍합 같은 해물 덕분인지 자극적이지 않은 낙지볶음 같은 맛이 났다. 또 전시에서 소개한 약고추장, 즙장, 천리장, 두부장도 직접 맛볼 수 있었다.

즙장은 장아찌와 장조림의 중간쯤 되는 맛. 장아찌보다는 덜 새콤하고, 장조림보다는 덜 짜고 진하지 않았다.

천리장은 수업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장이었는데, 빵에 곁들이니 발사믹+올리브오일보다 육향과 짠맛이 더해져 훨씬 잘 어울렸다.

두부장은 맛과 질감 모두 치즈 같았다. 특히 짜 먹는 까망베르 치즈가 떠올랐다.


전시를 보면서 ‘나에게 장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이어졌다.


우리 집 옥상에는 지금도 할머니가 쓰시던 옹기가 남아 있다. 어릴 적 나는 메주향을 무척 싫어했다. 계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따뜻한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1년에 한 번쯤 할머니 방에서 낯선 향이 풍길 때가 있었는데, 바로 메주를 띄우실 때였다. 아랫목에 두꺼운 이불을 덮어놓으셔서 내 이불에까지 메주향이 밸 정도였다. 그날로 새 이불을 장만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 장이 담겨 있었고, 또 어느 순간 된장과 간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명절이 되면 고모들에게 된장을 나눠주셨던 모습도 떠오른다.


고추장은 어느 날 부엌 구석의 큰 대야에 새빨간 무언가가 놓여 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것이 고추장인지도 모르고 오가며 젓곤 했다. 또 집안 가득 진한 향이 퍼지는 날은 간장을 따르던(끓이던) 날이었다.


요리를 전공하기 전, 나에게 ‘장’은 맛이 아니라 향으로 기억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한식을 전공하고 난 뒤, 그 장들이 너무 귀하고 값지게 느껴졌다. 동시에 더 이상 할머니 장을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내가 장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발효음식 수업에서였다. 직접 된장, 간장, 고추장, 막장을 담그고 장 가르기까지 해 봤다. 졸업식 날에는 그 장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이 강하게 남아 있다. 또 4학년 때, ‘광이원’을 운영하시는 교수님 덕분에 3년 차·6년 차·9년 차 간장을 맛본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시간의 깊이가 맛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꿉꿉하다’ 고만 생각했던 장이 새롭게 다가왔던 이유였다.


나는 늘 장이라고 하면 된장, 고추장, 간장 정도만 떠올렸다. 장은 늘 똑같고, 크게 변하지 않는 음식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대구장, 즙장, 천리장, 두부장 같은 새로운 장들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기존 장을 응용하거나 검은콩, 완두콩 등 다른 재료로 만든 장은 마치 배추김치뿐 아니라 고수김치, 갓김치 등 수많은 김치가 존재하는 것처럼, 장 역시 무궁무진하게 변주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장이 이렇게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