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아침에,
가족이 함께 모여 조상에게 감사와 경의를 드리는 의식이다.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밤에 지내는 의례로,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조상 한 분을 기리는 시간이다.
우리 집에서는 매년 설과 추석, 두 번의 차례와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두 번의 제사를 지낸다.
어릴 적에는 증조부모, 고조부모 제사까지도 함께 지냈지만 하나둘 줄어 지금은 네 번만 남았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는 명절이면 사촌들이 모이고, 집안은 늘 분주했다.
아빠는 여섯 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라 제사 준비는 늘 우리 집의 몫이었고, 엄마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거의 혼자 모든 음식을 준비했다. 어떻게 그 체력과 정성으로 그 많은 음식을 해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어릴 적의 명절은 단순히 ‘맛있는 날’이었다.
설날엔 할머니와 만두를 빚고, 추석엔 송편을 만들었다. 나는 엄마 옆에서 밀가루를 묻히거나 전을 굽는 걸 도왔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의 의미는 몰랐지만,
그날의 공기 냄새, 새벽의 찬 기운, 사촌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소리는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는 우리 집이 ‘큰집’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명절이면 다들 우리 집으로 오는 줄만 알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음식을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큰 노동인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늘 고모들이 나눠갈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었다. 명절 동안 나와 엄마는 손님맞이하고, 상 차리고, 치우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부터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오히려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잡아 명절을 보내기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명절 풍경은 달라졌다.
엄마는 음식 양을 줄였고, 대신 아빠가 장을 보고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이번 추석에는 처음으로 전과 음식을 사서 차례상을 차렸다.
우리 집에선 30년 만의 변화였다.
요리를 전공하면서 나는 늘 고민한다.
‘차례와 제사상’이라는 이 전통적인 음식문화는
각 가정이 지켜내야 할 소중한 문화일까,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져도 되는 걸까?
지금은 제사 음식을 대신 준비해 주는 업체도 많고,
냉동 전이나 간편 제사 음식도 흔하다.
세상이 변하듯, 음식 문화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쓰시던 숟가락을 꺼내 차례상을 차릴 때면
문득,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 순간은 단순히 예의와 형식이 아니라
그리운 사람과 다시 함께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물론 누군가가 홀로 모든 음식을 준비하는 건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한다.
명절은 단순히 긴 연휴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제사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음식은 세대를 이어주는 시간의 도구다.
그런 마음으로 가족 모두가 함께 준비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문화가 될 것이다.
이제는 음식을 직접 하느냐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는 지난 듯하다.
중요한 것은 그 음식에 담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