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박카스
나는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시장에 간다.
동네에 있는 작은 시장은 평소에도 자주 가지만,
경동시장, 노량진수산시장, 광장시장, 가락시장 등
규모가 크거나 거리가 있는 곳들은 자주 가지는 못한다.
시장에 가면 에너지가 느껴진다.
제철 식재료가 주는 설렘인지,
상인들이 주는 기운인지,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의 활기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다른 공간과는 다른 온도가 있다.
특히 새벽시장은 그 느낌이 더 강하다.
스무 살 초반, 단순히 생선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지하철 첫 차를 타고
노량진수산시장 새벽시장에 다닌 적이 있다.
고요한 도시와는 다르게
시장 안은 이미 하루가 한창이었다.
바쁘고 정신없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생선들을 하나하나 구경했다.
아직도 생선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때의 시간 덕분에
이제는 생선이 낯설거나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때는 제철 회도 챙겨 먹었는데,
요즘은 그러지 못하고 있어 조금 아쉽다.
요즘 자주 가는 시장은 경동시장이다.
채소와 과일이 일반 마트보다 저렴하고,
신선하고, 종류도 훨씬 다양하다.
시장에 가면 내가 잘 모르는 식재료도 많다.
나물, 약재, 때로는 말벌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
요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백화점 지하 식품관이 가장 좋았는데,
요즘은 시장이 훨씬 더 좋다.
어릴 적에는
할머니가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아침 일찍 경동시장에 다녀오셨다.
손수레를 하나씩 끌고
장을 가득 봐 오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는 그 풍경이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내가 시장에서 장을 보며
그때의 할머니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맛있고 좋은 음식을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고 싶었던 그 마음.
시장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공산품은 내년에도 나올까 고민하게 되지만,
식재료는 당연히
“내년에도 사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년에도 이 재료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
조금 두렵고, 꽤 슬픈 일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계절에 만나는 식재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찾은 시장에서
색이 선명한 과일과 푸릇한 채소,
신선한 해산물과 주전부리를 보며
괜히 마음이 설렜다.
요즘 조금 지치고 무기력하다면,
시장 한 바퀴 돌아보는 건 어떨까.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구경하고,
향도 맡고, 사람들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다시 움직일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