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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an 17. 2023

산알(下)

  창밖에 실비가 내린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글거리던 열기가 견디다 못해 !’하며 하복부의 기해혈(氣海穴) 언저리로 분출하는 느낌을 받았다. 표피 가까이 밀려 나오더니 임맥(任脈)에 편승한 듯 아래로 흘러내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행렬은 느리면서도 도도했다.

     

 얼핏 뜨거운 진액으로 알았다. 냉철히 들여다보니 열에 아주 달구어진 미세 모래 알갱이와 흡사했다. 투명한 링거 줄에 천천히 흐르는 수액. 그 속에 이들 무리가 서로 비벼가며 밀려 내린다는 것이 적절한 묘사일 것이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관원, 중극, 곡골혈(치골) 방향으로 향했다. 뜻밖의 상황에 적이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나 집중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몸 전면 정 중앙선을 따라 균일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회음혈까지 이르렀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양 허벅지 안쪽을 좌우 두세 갈래로 나눠 무릎까지 흘러내렸다. 가부좌 행공임에도 소변을 지리는 것처럼. 그리곤 열기가 서서히 소멸되었다.

     

 일회성 이 별난 체험에 대해 그동안 이모저모 곱씹어봤다. ()의 실체라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이것의 진행 속도가 그렇게 느렸던가?

 황제내경영추 15 영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 한 호흡 사이에 기는 여섯 치를 나아가 열 숨에 여섯 자, 따라서 270번 숨을 쉴 때 맥기는 16()을 흘러 전신을 일주한다용어, 측량 단위를 감안하면 한 호흡에 기는 약 18cm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다(3.75/호흡, 3cm/). 결국 기가 기해혈에서 회음혈까지 흘러가는데 실제로는 두 호흡이 조금 모자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빨리 흘렀다고? 쉬 납득이 안 갔다.

     

 돌이켜보면 새벽 수련, 각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상황이다. 주관적 시간과 절대적 시간과의 간극. ‘주위 관문 이론(attentional gate theory)’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각성할수록 시간 펄스를 많이 발생시키고 누적되어,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됐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링거 줄, 투명 수액, 미세 모래 알갱이 등이 실재 크기(scale)와 거의 같았던가? 물론 비유일 뿐이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집중할수록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미시적 접근이 가능했고,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익숙했던 사물들이 떠오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집중력으로 단전에 열감이 생기면 회전 응축시키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실기(失期)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가 회음에서 장강혈(꼬리뼈) 그리고 척추를 타고 독맥으로 올랐을 것이다. 열감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실기의 보상인 셈이다.

     

 뜨거운 미세 입자들의 흐름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명쾌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의식을 하복부에서 말아 돌릴 때, 뭔가 따라 움직이더라 하는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미세 입자를 눈으로 보듯 인지한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미제로 덮어 둘 수밖에 없었다.  

     

 20001월 우연히 정신세계창간호를 보다가 북한에서 먼저 밝힌 경락의 실체라는 기사를 접했다. 김봉한이라는 학자가 봉한학설을 내세웠다. 경락을 연구하다 보니 거기에 생명의 신비로운 비밀이 담겨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1111, 모 일간지에 특집 기사가 떴다. 암 전이의 중요 통로 경락, 실체 드러났다기사를 읽으며 연신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이십여 년 전 체험했던 미세 입자의 움직임에 대한 어떤 단초를 발견한 것 같아서다. 뭐니 해도 산알(살아있는 알)’에 관한 내용이 관심을 끌었다.

     

 소광섭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의 발표였. 토끼의 뇌에서 척수로 내려가는 부위인데, 머리카락 굵기의 경락(한때 봉한관)을 발견하고 프리모(Prime)’라고 명명했다. 관 속에는 DNA를 가진 극미세 세포가 있다. 이것은 북한 김봉한의 산알’과 같아 보인다. 일반 세포와 전혀 다른 특성으로 분열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체험했던 기의 실체가 프리모관 내 산알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여러모로 유사성은 있으나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는 주관적 인식의 대상이지 계측이나 재현 또는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체의 신비로운 체험들이 가끔씩 현대 의학에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선도의 양생법인 단전호흡은 우리 몸의 기를 축적한 후 기의 운용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는 기술이다. 이미 낙향하여 찾아오는 동호회원들과 수련하는 나날이 즐겁다. 요즘은 낙향(落鄕)했다 하지 않고 낙향(樂鄕)에 있다 말하고 다닌다.  




A) 프리모(Primo) 

B)산알

자료출처(A, B) : 중앙일보(2011.10.10.)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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