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 수련 문화가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던 90년대 초반. 나는 회사 출근 전 수련장에 들려 새벽 수련을 1년 가까이 이어갔다.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두 번씩이나 중도 포기라는 유혹도 있었다.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후 옹골찬 결의가 솟구쳤다.
단전호흡 40분 동안에 취하는 12개 행공(동작)은 너무 힘들었다. 수련 기간은 한 달이였다. 신기하게도 이십여 일을 넘기면 어려운 행공과 긴 호흡이 무난해졌다. 다음 달 또 다른 행공 12개를 하며 모두 360개를 거쳐야 하는 수련단계이다.
영등포 수련장 난방 시스템은 열악했다. 석유 무쇠난로만으로 실내 공기를 데우면 구조라서 바닥이 찼다. 수련 날짜가 채 백일이 안 된 사람들은 그나마 난로 가까이 자리했지만, 나는 맨 앞쪽 냉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평소 수족이 차가웠다. 감기에 걸렸다 하면 조제약으로 한 달이 넘도록 씨름을 할 정도였으니까.
수련 일수가 늘어날수록 몸에 여러 변화가 찾아들었다. 예를 들자면, 준비운동에서 양 발 좌우로 넓게 벌리고 가슴이 완벽하게 바닥에 닿던 무렵이었다. 양 발바닥이 갑자기 후끈거리더니 하루 종일 온기가 지속됐다.
몸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윤택한 피부 그리고 온몸이 무엇으로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상단전과 중단전에서의 특이한 체험도 했다. 하복부의 내관이 마침내 가능해지면서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참선 수행하는 스님들도 잠과 잡념이나 고통에 시달린다 했다. 동네 개구쟁이들 못지않고, 밭두렁 도깨비바늘 같기도 한 잡념은 나의 평정심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천적은 늘 가까이 있는 법. 입문 1년이 지나 수련단계가 바뀌자 상항은 달라졌다. 잡념도 한가해야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곡예와 같은 행공 자세에서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호흡에만 몰입해야 했다. 잡념이 점차 수그러들자 상대적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2년 남짓 시일이 지나자 아랫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12번째 마지막 행공은 결가부좌하고 앉아 기운을 갈무리하는 과정인데, 하단전에 테니스공만큼 열감이 생겨났다. 『동의보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단전은 배꼽에서 3촌 아래에 있고, 사방 4촌 범위이다.(下丹田, 在臍下三寸, 方圓四寸)’
오른쪽 옆구리에서 배꼽까지 뜨거운 물 같은 게 흐르는 현상도 나타났다. 단전호흡 40분이 끝나면 마무리 운동을 위해 바닥에 드러눕게 되는데, 어깨 등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열기가 온몸으로 확산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열감은 기도나 참선 그 밖의 수련법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가령, 청담스님도 자신의 책 『마음』에서 말했다.
‘도통할 때 온몸이 불덩이 같아 전신의 신경이 다 타는 듯하더라.’
단전자리가 잡히자 관심도 덩달아 높아져, 일요일만 빼고 끈기 있게 수련에 임했다. 호흡은 40~50초를 오갔다. 어떤 때는 지식(止息)이 너무 길어져 일부로 숨을 들이켜기도 했다.
이른 아침 태아가 엄마 배를 이리저리 발로 차듯 열감이 이동하기도 했다. 수평선 해돋이처럼 열감이 잡히다가 강하게 집중하면 와이셔츠 단추 크기만큼 줄어들었다. 이때는 볼록렌즈의 초점이 맞춰진 상황과 같은 즉, 벌겋게 여린 살갗이 타는 것 같았다.
단전의 혈(穴)을 ‘관원’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됐고, 앞으로는 회음혈, 장강혈(꼬리뼈)로 옮겨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원활하면 기운을 복강 내에서 돌돌 말아 응축해가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순리였기 때문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