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후반 회사원 때였다. 좌충우돌 혈기 왕성하던 시절이니, ‘단전호흡’이란 얼핏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그럼에도 발을 내디딘 것은 부지불식간 자기 성찰이라는 목마름이 있었던 모양이다.
수련장에 안 나간 지 일주일이 지날 무렵, 새벽 수련을 재개했다. 비 온 뒤 땅 굳듯이 다시는 뒷걸음치지 말자 결기를 다지면서.
지난 이백여 일 동안은 몸의 중심 즉, 비장과 위장을 튼실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이젠 뿌린 씨앗이 천지의 기운을 받아 발아하듯 심신을 성숙시키는 단계인데 23개 행공 동작이 만만치 않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열 손가락과 머리만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서기, 손가락을 세워 짚고 푸시업 준비자세, 엉덩이만 바닥에 대고 가지런히 위로 뻗은 다리를 두 팔로 껴안기, 배만 바닥에 대고 등 뒤로 양 발목을 낚아채기 등이다. 각 동작들을 1분 20초간 유지만 채 단전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수련 단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지식 호흡(止息呼吸)이었다. 20초 호흡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되 호흡 사이에 숨을 멈춰보는 것이다. 들숨吸(5초)⤍멈춤止(5초)⤍날숨呼(5초)⤍멈춤止(5초)의 구조다.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16자(字)의 한자음을 리듬에 실어 들려주는데 20초가 소요됐다. 이것을 한 마디로 봤을 때, 네 마디가 반복되면 신호음이 나오며 다음 행공 동작으로 바꾸는 것이다.
난도가 높은 동작에 지식 호흡까지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무엇보다 숨이 가빴다. 원장에게 물었다. 조금 수월한 방법이 없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시원찮았다. 어느 카피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였다.
나름 요령을 피웠다. 들숨과 이어지는 멈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5초 날숨 후 5초 멈춤이 Key point인데 4초와 6초로 해보니 그런대로 따라 할 수 있었다. 오호라! 며칠 동안 넷째 마디만 이렇게 호흡을 하다가 무리가 없으면 둘째, 넷째 마디 순으로 확장해 나갔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지식이라 해서 숨을 완전히 멈추거나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간혹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혼자 하다 부작용(탈장)을 일으키는 사례를 보기도 했다. 수련법을 시중에 보급한 선사(仙師)는 말했다.
‘계곡물이 호수 언저리부터 수면 아래로 스며들어, 가운데로의 흐름을 흡지(吸止)라고 한다. 또한 쌀 씻은 물을 거의 다 따르고 나서, 살짝 밀어 넣는 듯 되돌리는 것이 호지(呼止)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수련기간은 백 일이었다. 십여 일 남겨둔 시점에 이르러서야 모든 행공 지식이 가능해졌다. 특히 배만 바닥에 대고 등 뒤로 양 발목을 낚아챈 동작에서의 호흡, 무지하게 애를 태웠다. 이 행공 동작은 양(羊)이 서있는 형상을 닮아 미법(未法)이라 하니 기막힌 아이러니였다.
관건은 날숨 끝머리와 멈춤(呼止)에서 한 치의 마음 동요도 허락하지 않고, 들숨에서 하복부만 바닥에 댄 채 최대한의 힘을 줘야 했다. 그래야 흉강을 넓혀 깊은숨 쉴 수 있었다. 잡념이 많으면 지식은 불가였다.
아랫배(단전 부위)에 오롯이 집중할 때 온몸이 들렸다. 다음 행공을 넘어가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게 가능한 것이구나!’
원장에게 수련이 바르게 돼 가고 있는지 물었다. 아직도 얼굴이 경직되고 양 어깨와 가슴이 들떠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몸에 힘 빼는 데만 족히 일 년은 더 걸릴 것이라 했다.
근래 지인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송나라 시대 수행자 종색선사의 『좌선의』다. 읽다가 시선이 멈춘 곳 중 하나다.
‘‘앉은 지 오래됐다.’는 말은 제법 오랫동안 참선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래됐다’고 해도 몸과 마음에 힘이 모두 빠질 때 비로소 ‘앉을 줄 안다’고 할 수 있다.’
수련 단계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몸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손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거울을 보며 윤택한 피부에 어리둥절했다면 남들이 곧이 믿을까. 큰 목소리로 누굴 부를 때 묵직하면서도 미성이어서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한 번은 월차휴가를 내고 오전 10시경에 수련했을 때다. 끝내고 영등포 시장 앞 횡단보도를 지나가는데, 날아가듯 가볍고 빠른 보폭으로 건너편 보도에 서있지 않던가. 이러다가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승단식을 한 후 다음 수련 단계로 들어갔다. 12개 행공밖에 안 되지만 하나하나가 서커스 공연의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이었다. 벽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달 후 중도 포기라는 위기에 봉착했지만, 들어간 비용보다 그간의 공(功)이 아쉬워 털고 일어섰다. 저만치 몸과 마음을 크게 변혁시킬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