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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an 09. 2022

흔들리는 초발심

 ‘93년 어느 봄날, 수련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새벽 5시 언저리를 가리켰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원장과 오육십 대로 보이는 세 분이 몸을 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어릴 때 마을 정자나무 아래 어르신들이 그랬고, 큰집에 가면 안방의 할아버지와 어른들이 담소하던 모습도 그랬다. 단전호흡이라는 신이한 운동은 내 인생 여정에 그렇게 접붙이기를 하였다.

     

 동생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었지만 나름의 명분을 내세워야 했다. 서원이라도 굳건해야 중도하차라는 불미스러움을 면할 것 같아서다. 명분은 간단명료했다. 강인한 체력과 맑은 정신의 지속 가능성이다. 그 이상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새벽 4시 반. 잠자리에서 일어나 영등포 수련장의 첫 회를 수련하고, 곧장 여의도 회사로 출근하는 루틴이 시작됐다.

     

 기업체의 속성상 퇴근시간이 늦고 특히 새벽잠이 많았던 내게 있어 새벽 운동이란 전무후무하였으니 대단한 발심이라 할 것이다. 첫 시간(520) 회원은 나를 포함하여 네 사람뿐이었다.

 수련장은 석유 무쇠난로와 긴 연통을 이용한 재래식 난방 구조라 바닥이 차가웠다. 수련시간은 1시간 반 가량인데 맨 처음은 요가와 엇비슷한 스트레칭이었다. 테니스를 주말마다 했음에도 유연성은 기존 회원들과 비교가 안 되었다. 그중 젊은 사람이고 보니 창피스럽다는 느낌이 어찌 안 들겠는가.

     

 다음은 명상음악과 신호음에 따라 25개 행공(行功)을 서서히 바꿔가면서 배꼽 아래 단전으로 부드러운 호흡을 했다. 각 행공마다 멈춰서 120초 동안 호흡하고 난 후 다음 행공으로 바뀌는데 대략 40여 분이 소요됐다.

 행공 동작들은 그렇게 어렵다고 볼 수 없지만, 왜 이토록 복잡다단한 동작을 하면서 호흡하는지 몰랐다. 경황이 없어 시키는 대로 따랐다. 며칠 동안은 도표의 행공 동작을 보고서 했지만 얼마 후 외워서 했다.

     

 조명을 대부분 끈 상태에서 원장은 회원 사이를 오가며, 호흡과 동작을 살피고 세세한 부분까지 바로잡아주었다. 법사라는 원장은 일관되게 내게 말했다.

1) 숨을 들이켤 때는 허리 명문혈(命門穴)에서 배꼽 아래 5~6cm 아래 관원혈(關元穴)와 함께 밀려들어 오고, 숨을 내쉴 때는 명문으로 체내 탁기와 같이 밀어낸다 생각하라.

2) 신호음에 따라 행공을 바꿀 때는 서둘지 말고 몽중 유희(夢中遊戱 꿈속에 노는 것 같이)하듯 하라.

3) 척추는 올곧게 세워 양 어깨는 힘을 빼라. 당분간은 5초간 마시고 5초간 내쉬는 것을 균일하게 하면서 단전(관원)에 은은한 힘이 들어가게 하라.

     

 수련 중에 내게 다가오면 단전 부위에 손가락 두세 개를 가볍게 대고 한동안 있기도 하고,  양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나직이 말하기도 했다.

어깨 힘 빼세요. 조금 더..”

얼굴도 편안하게..”

 호기심에 실눈을 떠 선배들의 모습을 훔쳐봤다. 머리와 양 손가락만 땅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거나, 다리를 일자로 벌리고 가슴을 바닥에 댄 채 호흡에 집중하고 있었다.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호흡수련이 끝나면 다시 누워서, 엎드려서 그리고 서서 몸을 푸는 여러 동작을 함으로써 끝났다.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다.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내려 걷는데 몸이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하였다. 온몸의 뼈 관절이 마치 꼭두각시 인형극에 나오는 인형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런 후 2~3분 정도 걸으면 풀렸는데 이런 증상은 꽤 지속되었다.

 

 수련 백일 후 승단 절차를 거치고 제법 난이도가 있는 25개 행공으로 바꿨다. 하나를 끝냈다는 뿌듯함이 앞섰다.

 입문한 지 8개월 정도 됐을 무렵이다. 그동안 의 실체는 차치하더라도 무슨 잡념은 그렇게도 많던지! 평소 생각하지도 못한 케케묵은 옛일들이 굴뚝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현재의 고민거리도 강아지가 물어뜯듯이 집요했다.

 이 시간이면 한참 꿀잠에 빠져있을 때인데,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되묻는 날들이 잦았다. 결국 내게는 안 맞는 운동이라 결론을 내고 모양새는 안 좋아도 중도 하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 이후 회사 일을 하면서도 천년 묵은 숙변이라도 해결한 듯 홀가분했다.

     

 추가 등록하지 않고 사나흘 지났을 때였다. 새벽 이부자리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꼬박꼬박 지불했던 돈에 대한 미련이 덜컥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당시 월 수련비가 7만 원이었으니 수련장에 꼬박꼬박 상납(?)한 돈이 60만 원이 넘었다.  

 요즘 들어서 싸늘해진 아내 눈빛도 부담스럽기는 하나 번복하자니 알량한 자존심이 퇴로를 버티고 있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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