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어느 봄날, 내가 수련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원장과 오륙십 대로 보이는 세 분이 몸을 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장면은 어릴 적 마을 정자나무 아래 어르신들, 큰집 안방의 할아버지와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나는 단전호흡을 내 인생에 접목시키기로 결심했다.
동생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었지만, 나만의 명분이 필요했다. 서원이라도 굳건해야 중도하차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명분은 간단명료했다. 강인한 체력과 맑은 정신을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새벽 4시 반. 나는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 영등포 수련장에서 첫 수련을 마친 후, 곧바로 회사로 출근하는 루틴을 시작했다.
기업체 특성상 퇴근 시간이 늦고, 새벽잠이 많던 나에게는 새벽 운동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첫 수련 시간(5시 20분)에는 나를 포함해 네 사람뿐이었다. 수련장은 석유 무쇠 난로와 긴 연통을 이용한 재래식 난방이라 바닥이 차가웠다.
1시간 반 동안 요가와 비슷한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명상음악과 신호음에 따라 25개 행공을 서서히 바꿔가며 했다. 각 행공은 1분 20초 동안 호흡하며 다음 행공으로 넘어가는데, 총 40여 분이 소요되었다.
행공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왜 복잡한 동작을 하면서 호흡을 해야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며칠 동안은 도표의 행공 동작을 보고 따라 했지만, 얼마 후 외워서 하게 되었다.
조명을 대부분 끈 상태에서 원장은 회원들 사이를 오가며 호흡과 동작을 살피고, 세세한 부분까지 바로잡아주었다. 법사인 원장은 일관되게 내게 말했다.
“첫째, 명문혈에서 배꼽 아래 관원혈로 숨을 들이쉬고, 명문혈로 체내 탁기와 함께 밀어낸다고 생각하세요. 둘째, 신호음에 따라 행공을 바꿀 때는 서두르지 말고 꿈속에 노는 것처럼 하세요. 셋째, 척추는 똑바로 세우고 어깨는 힘을 빼세요. 당분간은 5초간 마시고 5초간 내쉬는 것을 균일하게 하면서, 단전에 은은한 힘이 들어가게 하세요.”
수련 중에 원장이 내게 다가오면, 단전 부위에 손가락 두세 개를 가볍게 대고 한동안 머물기도 하고, 양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나직이 말하기도 했다.
“어깨 힘 빼세요. 조금 더.”
“안면 근육도 편안하게 풀어주세요.”
나는 실눈을 떠 선배들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 그들은 머리와 양 손가락만 땅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거나, 다리를 일자로 벌리고 가슴을 바닥에 댄 채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호흡 수련이 끝나면 다시 누워서, 엎드려서, 그리고 서서 몸을 푸는 여러 동작을 함으로써 끝이 났다.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내리려는 데, 몸이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했다. 온몸의 뼈와 관절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런 후 2~3분 정도 걸으면 풀렸지만, 이런 증상은 꽤 지속되었다.
수련 100일 후, 나는 승단 절차를 거치고 난도가 높은 25개 행공으로 바꾸었다. 하나를 끝냈다는 뿌듯함이 앞섰다.
입문한 지 8개월쯤 되었을 때, 그동안 기의 실체는 차치하더라도 잡념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케케묵은 옛일들이 굴뚝 연기처럼 피어올랐고, 현재의 고민거리도 강아지가 물어뜯듯 집요하게 떠올랐다.
이 시간에 꿀잠에 빠져있을 나를 떠올리며,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되묻는 날들이 잦았다. 결국 이 운동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모양새는 좋지 않지만 중도 하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 이후 회사 일을 하면서도 오랜 숙변을 해결한 듯 홀가분했다.
추가 등록을 하지 않고 사나흘 지나던 어느 날, 새벽 이불속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지불했던 돈이 아까웠다. 당시 월 수련비는 7만 원이었으니, 수련장에 꼬박꼬박 상납(?)한 돈이 60만 원이 넘었다.
요즘 들어 싸늘해진 아내의 눈빛도 부담스러웠지만, 번복하기엔 자존심이 발목을 잡고 있어,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