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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Oct 05. 2021

선(仙)의 불꽃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나면 집 앞 수련장(照元堂)으로 향한다. 수련장이라고 해봤자 두 칸 반짜리 농가 가옥을 사들어 방을 틔운 것이다. 창문을 열고 환기부터 시키는데 비 온 뒤라 앞산 구름이 수묵화처럼 걸려있다.    

 만년까지 수련할 공간을 갖는 것이 나의 염원이었다.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이라고들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한다고 했던가, 일주일에 두어 번 회원들이 찾아온다.    

 

 귀향하자 지역신문, 관공서, 문화강좌, 학교 등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러나 단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삼 년을 넘기지 못했다. 수련의 절반은 요가와 얼핏 유사하지만, 이어지는 단전호흡은 생소한 용어만큼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 수련장에 오는 분들은 외국에서 또는 도시에서 몇 년을 했던 분들이다.    

 이 수련을 처음 접했을 때 나 또한 생뚱맞다고 여기긴 마찬가지였다. 두 살 아래 친동생이 진지하게 권유함에도 고리타분한 유습으로 치부했으니까.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라 주말마다 직원들과 테니스를 즐겼다. 그 당시 여의도 전경련회관 옆에 테니스 코트(제일 테니스/클레이)가 있었다. 지금의 여의도 웨딩 컨벤션, KT, 파크센터 오피스텔을 아우르는 블록이다.   

 전날 부서 회식에서 술을 좀 마셨더니 토요일 오전 근무 내내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퇴근 후 몸을 추스르기 위해 게임 대신 랠리만을 했는데,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라켓을 든 팔꿈치에 힘이 빠져 팔을 들어올리기 힘들었다. 말로만 듣던 테니스엘보임을 알아챘다.


 이후 통증클리닉에서 레이저, 초음파 등 치료하며 두세 달 운동을 쉴 때였다. 동생이 집에 와서 시연을 보이는데 도대체 따라 할 수 없었다. 손가락 세워 팔 굽혀 펴기 20회, 앉아서 상, 하체  폴드 접기, 엄지와 검지 힘만으로 맥주병 뚜껑 접기 등이다. 그래도 반신반의했다. 며칠 후 책 한 권을 보내왔다.    


 편저자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 김〇언 이었고, 『〇〇〇 단전호흡』, 한국방송사업단, 1984에 발간한 책이었다.    


 펼쳐보니 먼저 운동의 개요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설명돼 있었다. 호흡수련 들어가기 전 몸 풀기 동작들의 도해가 나왔고 요가와 유사했다. 이어서 메인에 해당하는 단계별 호흡 수련인데, 아크로바틱 한 수많은 동작들이 백 여 페이지에 걸쳐 직조돼 있었다. 동작마다 본법과 별법의 고유 명칭이 있고 옆에 해설까지 붙어 놨다.     

 이런 동작을 취한 채 깊은 숨쉬기를 한다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이런 체계 같으면 해 볼 만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영등포 수련장으로 나가 한 시간 반가량 수련했다. 아침 식사는 여의도로 출근하는 승용차 안에서 간편식(빵, 과일, 계란 등)으로 대체했다. IMF 환란 즈음 퇴사할 때까지  년 남짓 그랬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낯선 운동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수련의 진수를 처음 몸과 정신으로 감당했던 때라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내관(內觀)이 가능한 이야긴가, 정신집중의 정점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는 평소의 궁금증들은 그때 체득했다. 다만 경락을 흐르는 기(氣)의 미묘한 현상을 극적으로 체험했으나 이해 불가였다.

 훗날 소광섭 교수의 기고문을 보다가 봉한 학설을 처음 접했는데 소름이 돋았다. ‘산알’ 때문이다.    


 귀향하기 전까지 수련원을 운영했었고 외부 출강도 잦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 잊어지지 않는 사람과 사연들이 왜 없겠는가. 수련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몸과 마음의 변화들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고, 공유하면서 선의 불꽃을 지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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