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어떤 것도 되돌아 나올 수 없는 흡반(吸盤), 블랙홀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어느 수필집에서 이 같은 문구를 접하고 잠시 책을 내려놓았다.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IMF 환란의 파고가 거세던 ‘98년 늦가을.
건강관리를 위해 시작한 단전호흡 수련이 6년째를 맞이했다. 불경기에 자격증이라도 받아 둬야겠다는 일념으로 봄부터 토요일 오후마다 본원에 나가 사범 연수를 받고 있었다. 이번 겨울만 넘기면 1년 정규과정이 모두 끝나게 된다.
중간 휴식 시간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는데 어젯밤 꿈이 자꾸 떠올랐다. 시내에 나온 김에 친구를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려 받아보니 놀랍게 그 친구였다. 오늘 시간이 나면 맥주라도 한 잔 하자는 제의였다.
숙대 입구 카페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같은 회사에 다녔지만 친구는 얼마 전 외국인 회사로 옮겼고 나 또한 명퇴를 하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친구는 대학 졸업 무렵, 직접 병 수발들던 모친을 저 세상으로 보내드려야 했다. 부모의 불화가 잦았던 집안에서 성장한 친구는 부친을 꽤 증오했던 모양이다. 지갑에 항상 모친의 사진을 넣고 다녔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되어서야 그 마음이 누그러져, 아들 네 집이라 돌아온 부친을 싫은 내색 없이 모셨다. 회사 같이 다닐 때 친구 집을 몇 번 찾아 간 적이 있다. 그때마다 부친을 뵐 수 있었다.
지난봄 노환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뒤늦게 부친상을 전해 들었다. 발인 후 일주일이 더 지나서야 친구 집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분향재배할 수 있었다.
“근래 몸이 아파 고생한 아이가 있었나?”
갑자기 화제를 바꾸자 친구는 마시려던 맥주잔을 도로 내려놓는다.
“아니.. 간밤에 꿈이 이상하여 그냥 물어보는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냐?”
“분명 방에는 그 아이뿐인데.. 이층 침대 아래 칸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더라고. 병마에 시달린 것 같기도 하고..”
친구는 담배 연기만 길게 내뿜고 있었다.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머쓱했지만 친구가 이내 입을 열었다.
“큰애가 어찌 된 영문인지 병을 앓아 애를 태운 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지만 병명을 잘 모르니 제대로 처치라도 했겠어? 많이 좋아져서 엊그제 퇴원시켰어.”
“그래?”
“그나저나 이제 도사가 다 됐네!”
“허! 도사라, 그런데 말이야..”
정작 친구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아이가 방문을 바라보는데, 자네 부친이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모친도 들어오더라고. 누른 수의 차림에 천천히.. 모친이 측은한 기색을 띠며 손자 앞에 두 팔 벌리자, 희한하지!”
친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유심히 나를 보고만 있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경계를 풀지 않던 아이가 와락 뛰쳐나와 품에 안기더란 말이야. 두 분이 되돌아 나가는데, 어깨너머로 녀석은 긴장이 완전 풀린 모습이었어.”
나는 이 꿈의 모든 과정이 한 편의 팬터마임을 본 것 같았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끔찍할 정도로 선명했다. 맥주를 서로 권한 후 여전히 수긍이 안 가는 부분을 들추어냈다.
“이해가 안 돼.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이나 올봄에 돌아가신 분이나 수의의 낡은 정도가 비슷하더라는 거야. 물론 군데군데 썩고 문드러졌지만..”
어느새 창밖은 도둑처럼 어둠이 찾아들고 있었다. 대학가의 토요일은 밤이 빨리 오는 모양이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친구가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두 분 표정은 어땠어?”
“음.. 모친은 편안해 보였고, 부친은 좀 덤덤한 표정이랄까. 그건 왜 물어?”
“이제껏 우리 가족 몇 사람만 알고 있던 건데..”
“아버지는 발인 후 곧바로 시골 선산에 안장했어.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는 서울 인근 공원묘지에 혼자 있던 게 늘 마음에 걸렸지. 나는 날을 잡아 두 분을 합장하기로 했어. 주위의 반대가 심했지만..”
친구는 말꼬리를 흘렀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예를 올린 뒤 어머니 봉분을 파묘해보니.. 안에 물이 흥건한 채 형체마저 유지하고 있었어..”
나는 희뿌연 조명 건너 친구의 미간이 떨리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현몽이라 하기에 믿기지 않는 현실을 마주 대하며 나는 친구의 양 어깨에 시선을 떨구었다.
이제는 포용과 화해라는 외아들의 절절함이 레테의 강 저편 모친의 묵은 한까지 녹였을까.
그날 우리는 거나하게 취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