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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un 13. 2023

얄미운 추억

 청소를 하다 말고 틈새에서 뭔가 끄집어냈다. 채비가 다 된 낚싯대 두 개였다. 릴이 장착된 채로 구멍찌, 수중찌, 낚시 바늘까지 줄에 연결돼 있으니 손쉽게 던질 수 있는 상태였다. 한 시절 취미를 향유했던 그 끝자락을 발견한 셈이다.

       

 요즘은 FRP 소재로 된 선체에 야마하, 혼다 엔진이 대세인 것 같다. 우리가 해안에 도착해 보니 나무로 된 나룻배에 노 대신 경운기 엔진을 떼서 단 어선이었다.      


 플래시 불빛을 따라 조심스레 뱃전에 앉았는데 그믐인지 밤하늘이 어둑했다.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출발! 배 양옆으로 물살이 일기 시작하고 허연 시거리(야광충)가 넘실댔다. 한 손을 뻗어 휘젓으니 또 하나의 시거리가 생겨나 흥을 돋우었다. 얼마 만에 찾은 고향 앞바다이던가.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한려수도. 그 위에 내려앉은 별빛들..      


 이삼십 분을 지나 도착한 곳은 조그만 섬이라기보다 경사면이 급한 암초였다. 어구를 보관하는 헛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약속 시간을 정하고 고향 친구와 나는 배를 돌려보냈다.

 물 때가 맞지 않아 입질은 신통찮았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유유자적할 수 있었던 시간들. 한동안 만화 속에 노닐었다. 바다낚시를 한다고 하면 이런 낭만 하나쯤 가져야 한다. 뭐 이런 자부심이 각인된 날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 안에 이처럼 회사원 시절도 있었고, 명퇴 후 개인사업을 하기도 했다.      


 십여 년 전, 귀향을 결심하고 서둘러 준비한 것 중 하나가 릴낚시 용품이었다. 내려와 한 달에 최소 2~3일은 낚시를 즐겼다. 짭조름한 바닷냄새를 안주 삼아 캔 맥주 하나 들이키며 황금빛 낙조와 혼연일체가 되기도 했으니 낙향의 보상이었다.    

  

 젊은 날처럼 돈 내고 배낚시나 무인도에서의 밤낚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덜 잡히더라도 안전한 방파제 낚시가 제격이었고, 간혹 아이들이 고향을 찾아오면 방파제 밤낚시도 나가곤 했다.

      


 한 번은 다소 저돌적인 생각을 했다. 수년 동안 낚시를 했지만 잡은 물고기가 변변찮으니 이참에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고향 섬 남쪽 바다는 대양을 마주 보고 있기에 시야가 툭 트이고 갯바위가 발달된 지형이다.  

   

 승용차로 그곳을 찾았다. 노폭이 좁고 알려진 관광지다 보니 주차하기가 마땅찮았다. 해안 쪽으로 내려가 어느 펜션 마당에 주차를 하고 사정을 말하니 주차비 이만 원을 달라 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덜 붐볐고. 마침 빈자리까지 보여 짐을 풀고 앉았다. 명소라고 하지만 이외로 물고기 씨알이 잘았다. 그러려니 하고 이십여 분 지났을까. 제법 줄이 탱탱하여 기대하고 당겼는데 약 10남짓 불그스름한 물고기였다. 처음 본 것 같았다.      


 왼손으로 물고기 등을 잡고 입에서 낚시를 빼내는데 순간, 칼에 베인 듯 손가락이 따끔했다. 날카롭게 세운 등지느러미에 찔리고 만 것이다.

 피가 낭자하며 욱신거리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했다. 손가락을 물에 담그고 피를 더 짜냈다. 오히려 통증만 더 심할 뿐. 주위를 둘러봤다. 오른쪽 50여 미터 지점에 서너 명의 낚시꾼들이 보여 도움을 청했다.  

  

혹시 이 물고기 이름이 뭔지 아세요?”

? 그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내게 말한다.

잘 안 보여도 쏨뱅이같은데?”

쏨뱅이?”

그놈에게 찔리면 엄청 아파요.”

손가락 흔들고 꽉 눌려봐도 욱신거리기는 변함이 없었다.

좋은 약이라도 있어요?”

그냥.. 오늘 밤만 지내고 나면 괜찮을 겁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라고?      


 좀 있다 보면 덜하겠지 다독거려 가며 낚시를 던졌다. 하지만 물고기는 뒷전이고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부랴부랴 장비를 챙기고 남은 청개비를 그 사람들에게 넘기니 좋단다.     

 

 어서 읍내 약국이라도 갈 볼 셈이다. 해안 도로로 차를 운전하는데 여전히 쓰리고 아파 창문을 내리고 왼팔을 뻗었다. 그나마 찬바람에 통증이 설했다. 마주 오는 차 안 사람들이 의아해 쳐다보는 게 아닌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곧바로 아픈 손가락을 곧추세우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앞 필라(A-Pillar)를 잡았다. 이제 수신호로 착각하지 않겠지. 안도했다. 근데 이게 뭔가? 산 너머 머스깽이? 다행히 검지 손가락이지만 하느님을 능멸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낚싯대를 도로 자리에 세워뒀다. 늘 보이는 게 바다인데 무슨 충동이 일어나겠는가. 물고기도 늙었는지 잡히는 것이 예전 같지 않고, 늘어난 낚시 금지 구역, 무엇보다 물고기가 잡히는 곳에는 어망을 죄다 처버린 곳이 많다.

요즘도 앞바다에 쏨뱅이가 휘젓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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