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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에 남겨둔 얼굴

by 소운

수면 위로 수줍게 얼굴을 내밀던 여학생. 버드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잎들이 하나, 둘 내려앉는다. 여린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서로 다투어 형체를 지워 버린다. 장난기 서린 낙엽에, 나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호수처럼 잔잔한 성지곡 수원지 위로 가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부산은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항상 불어오는 도시다. 그럼에도 백양산 자락에 둘러싸인 성지곡 수원지에는 바람조차 얼씬거리지 못했다. 수변을 따라 난 산책로와 흙길, 삼나무 숲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남학생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날도 호젓하게 산책로를 걸으며, 어느 여학생에게 보낼 편지의 문맥을 다듬고 있었다. 서울 답십리에 산다던 강 씨 성을 가진 여고 2학년생. 그 인연은 그해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숙방을 같이 쓰던 친구에게 오는 편지가 부쩍 늘었다. 발신자는 모두 여자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친구가 진학(進學)지의 펜팔 코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한심한 녀석!’

나는 그렇게 지나쳐 버렸다. 일주일이 지나도 편지의 양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친구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편지부터 읽으며 즐거워했다. 이쯤 되자 나도 호기심과 시샘이 슬슬 일기 시작했다.

“야! 너는 어찌 그렇게 의리가 없냐.”

“뭘?”

“딱 잘라 말한다! 개봉하지 않은 편지 3개만 넘겨."

“맨입에?”

“알았다. 밤에 호떡 사줄게.”

그날 밤, 어렵사리 친구에게서 편지 3통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제대로 뽑힌 것 같았다. 우리 집에는 흔하디 흔한 누나나 여동생이 없었다. 이성 문제에 허심탄회하게 상의할 환경이 아니었다.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어떻게 써야 할지 막연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덴마크에 사는 여학생과 펜팔을 했던 기억이 전부였다. 몇 번 오가다 말았다. 서점에서 펜팔에 관한 책을 골랐다. 예문은 거의 연서 일색이어서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속속들이 자신의 신상을 밝히지 말 것. 첫 편지를 받으면 자기 친구들에게 돌려볼 수도 있다.’ 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섣불리 사진을 보내지 말 것.’ 그야 그렇고. ‘내용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해야 한다. 유머나 위트는 필수’라는 대목에서 마음이 덜컥 걸렸다. 다변도 아니었던 내게, 유머나 위트까지는 무리한 요구였다.

그때까지 편지라고 하면 아버님께 드리는 것밖에 없었다. 때가 되면 등록금, 하숙비, 용돈 등을 보내달라는 편지에 무슨 유머며 위트가 있겠는가. 언감생심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편지는 한 달에 두어 번 주고받았다. 편지가 올 때쯤이면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마냥 즐거웠다.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가 깨알처럼 담겨 있을까?

여러 꽃이 엷게 그려진 편지지를 펼치면, 그 위에 깔끔하고 때론 애교 섞인 글씨체. 행간에 묻어나는 여학생의 고운 숨결과 장난기들. 소소한 일이나 사물들을 소재로 삼아 절제된 문장,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나의 문체는 촌스럽고 투박했다.


답신을 아직 못한 체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길을 걷던 중, 스쳐 가는 이들의 이야기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다. 자판을 펼친 노파의 목소리. 유치원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등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이런 모습들을 질박함과 익살로 버무려 편지지에 고스란히 옮길 수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자기 이야기만 오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특정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면, 그녀는 호응하고 공감하려 했다. 그렇게 공동 관심사에 대해 할애하는 지면이 점점 늘어났다. 내가 인파이트 복서라면 그 학생은 아웃복서였다. 유화를 그린다면 그녀는 수채화로 그렸다. 그럼에도 나는 글이 느리고 어휘가 빈곤함을 느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수원지를 찾았다. 허허한 마음으로 산책로를 거닐다, 수변에 한참 앉아 있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듯 수원지에서의 단상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적어 내려갔다. 어느새 나는 큰 바위 얼굴에 나오는 소년 어니스트를 닮아가고 있었다.


이듬해. 3학년이 되면서 교실 내 분위기가 바뀌었다. 새로 편성된 학생들의 눈빛에서 선생님의 말투에 이르기까지 2학년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보낼 편지가 늦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부담스럽기는 여학생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여기서 매듭을 짓자.’

하지만 차마 그 말을 먼저 꺼낼 수 없었다.

4월 어느 날, 여학생에게 받은 편지들을 빠짐없이 챙겼다. 마지막으로 쓴 편지와 함께 큰 봉투에 넣었다. 등기로 보내고 돌아오는 길, 마지막 문장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끝내 태우지 못하고 돌려드리는 저를 용서하세요. 내일이면 후회하겠죠. 하지만 오늘만은 용기 내어 적어봅니다. 이제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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