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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season 1

by 소운


1.

“메시지가 왔습니다.”

폴더 폰 시절, 음성 신호음이었다.

‘누구지?’

퇴근길에 차를 운전하고 있어 바로 문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다 신호대기에 걸렸다.


“아빠 데리러 올 수 있우?”

오호, 딸 녀석이 나더러 학교로 오란다. 가만있어 보자.. 잽싸게 답신을 보내야 하는데, 신호가 바뀌기 전에.

하지만 자판이 깨알 같아서 안경을 쓰고는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자니 번거롭고, 그냥 고개만 바짝 숙여 안경테 너머로 글자를 조합해 나갔다. 손가락 놀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디어 문장을 완성했다.


“지금 간다.”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알았어! 간다고.’


“메시지가 왔습니다.”

‘또 누구지?’

다음 신호 대기에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몇 시에?”

그 녀석, 그냥 간다고 하면 됐지, 시간까지 물었다. 두 번째 신호 대기에서 또 다른 문장을 만들어 냈다.

“30분 후”

후후.. 이제 더 이상 문자가 오지 않겠지.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놈아, 제발 그만 보내라고.

“정문으로 올 거지?”

흥, 더 이상 문자를 안 보낼 거다. 난 자판기가 아니거든.



2.

엊그제 아들이 상병 휴가를 나왔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이니, 집이 사람 사는 소리로 넘쳐났다. 오후부터 내린 장맛비가 퇴근 시간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 반찬이 뭔가?”

“회 뜨고 남은 광어로 찌개 만들 거예요.”

그렇다면.. 비도 오고 하니 아들놈과 술 한 잔 하자구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기 전, 딸에게 문자부터 보내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야자가 끝나는 10시 30분까지 학교 정문으로 데리러 갔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 가지 못한다고 미리 말해야지. 문자를 보낼 때는 저장된 메시지를 불러와 수정한 후 보내면 편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나 오늘 못 간다.”

“왜염”

이 녀석 봐라, 아비한테 하는 말투가. 그럼 나도 너희들 버전으로 보낼게.

“술 한 잔 땜시롱.”

“뭐? 누구랑?”

놀라긴. 그새 또 다른 문자가 번개처럼 와서 꼽힌다.

“왜염, 기분이?”

허, 이 녀석 보게.

“오빠랑”

알았는지 더 이상 문자가 뜨지 않았다.

집으로 운전한 지, 10여 분이 지났다.

“메시지가 왔습니다.”

심술이 꽤 난 모양이다.

‘헉, 이게 뭐야’

“아빠 ㅋ 난데 ㅋ 아까는 친구가 자기 친군지 알았데 ㅋ. 그니까 아빤 갑자기 여기로 문자 하면 어뜨케 ㅋ”

휴가 나온 아들이 자기 것이라고 딸의 휴대폰을 빼앗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어제도 친구의 휴대폰으로 내게 문자를 보낸 건가?

메시지 아래에 알지 못하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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