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なぜ水をくれなかったのか?”
(왜 물을 주지 않았느냐?)
“...”
“答えは無い?”
(그래도 대답이 없어?)
버럭 화를 내는 일본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불려 나온 학생은 고개만 숙일뿐,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교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手のひらを出して!”
(손바닥 내놓아!)
매를 맞고 자리에 돌아온 학생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거친 숨결 속에서 눈물이 공책 위로 떨어졌다. 학생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선생님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방과 후, 학생은 맨 마지막으로 교문을 나서며 주위를 살폈다. 오가는 사람이 없자, 갓 심어 놓은 길 옆 벚꽃나무로 다가갔다. 반 친구들이 물을 주고 간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다.
학생은 발을 들어 어린나무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어깨를 들먹거려 가며 길 따라 꽃나무들을 남김없이 밟아나갔다. 일이 끝난 후, 그는 중얼거렸다.
“씨이! 왜놈들 국화에 왜 내가 물까지 주어야 하는데!”
중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 일화를 들려주셨다. 일본인들이 어디에서나 주인 행세하던 시절, 선생님은 그런 일본인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그날도 벚꽃나무에 물 주는 당번을 무시하고 집에 갔다가, 일본 선생님에게 들킨 사건이었다.
비록 체격은 작으셨지만, 선생님은 남다른 강단을 지닌 분이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형형한 눈빛으로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항상 박달나무 지휘봉을 들고 다니셨고, 나태함과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에는 가차 없이 회초리로 사용하셨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사람은 본분을 잊어서 안 된다.”
그날, 교과서에는 사육신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판서를 자주 하지 않던 선생님은 그날따라 한자를 써 보이셨다.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하고,
回頭日欲斜 회두일욕사라.
黃泉無一店 황천무일점하니,
今夜宿諛家 금야숙수가오?
우리는 뜻을 알지 못한 채 노트에 쓰기 바빴다. 교과서에 없는 한시였기에 더욱 생소했다.
“이 시는 성삼문이 형장으로 가면서 남긴 마지막 시다. 선현들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니, 한 수 정도는 외워두는 것이 좋다.”
뒷짐을 지고 창밖의 뜬구름을 쳐다보시던 선생님,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담담히 풀어 나가셨다.
“격고최인명하니, 참수형이 임박하자 둥둥 북소리는 내 목숨을 재촉하고. 회두일욕사라, 머리 돌려보니 해는 서산에 지려 하는구나. 황천무일점하니, 저승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는데, 금야숙수가오, 오늘 밤은 어느 집에서 묵어갈꼬.”
수업은 끝났지만, 나는 칠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14살의 조그마한 심장은 가해진 충격에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어떻게 죽음이 임박한 자리에서 저토록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꺾어질망정 휘어지지 않겠다는 충절과 선비정신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는 다음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여름방학 과제 중, 기행문이 있었는데 내가 쓴 ‘한려수도 기행문’ 원고를 낭독하도록 교탁까지 내어주시던 선생님.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조까지 찾아 줄줄 외웠던 것도, 진학 시험에서 국어 과목 만점을 받았던 것도, 모두 선생님의 영향 덕분이었다.
오월, 이 푸르른 달에 나는 성백희 은사님의 은덕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