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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자

by 소운

이십여 분쯤 걸었을까. 낯익은 등산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찾지 못했지만, 예전에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찾던 곳이었다. 편도 1시간 거리, 완만한 경사, 그리고 도시처럼 붐비지 않아 늘 한적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등산로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바싹 마른 잎들과 아직 푸른빛을 간직한 낙엽들이 뒤섞여 있었다. 한 계절을 풍미했던 잎사귀들이 이제 나목의 자양분으로 되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낙엽을 밟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살아오며 스쳐 간 기억의 편린이, 이처럼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처럼 내 머릿속에서 나뒹굴고 있지 않을까. 흐르는 시간 속에 바스락거리며 사라질 기억도 있고, 덜 마른 낙엽처럼 불쑥불쑥 되살아나는 기억도 있으리라.

그러다 문득, 낙엽들 사이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청춘 예찬

-민태원

“..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뒷짐을 진 채 책을 펼쳐 들고, 책상 사이를 오가며 단락마다 감정을 실어 낭독하던 선생님이 있었다. 읽다 말고는 추임새처럼 입맛을 다셨다. 친구들은 감동했는지 몰라도, 나는 심드렁했다. 오십 대 중반의 선생님은 지나온 청춘을 예찬하는 듯 보였다.


하굣길이면 인근 여고에서 나오는 학생들과 자주 마주쳤다.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쳤다.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다독였다. 여학생들의 마음은 만리장성이나 크렘린처럼 높고도 미지의 영역이니, 차라리 단념하자고.

그러던 어느 날, 서울 답십리에 산다는 또래 여학생과 펜팔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편지가 도착했을 때, 개봉 전까지의 설렘은 무엇에 비할 수 없었다. 두근거림을 진정시키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첫 자음을 유독 크게 시작한 그녀의 글씨체는, 특이하면서도 애교가 묻어 있었다. 일상의 단상을 담은 글이었지만,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 부드럽고, 개울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 소소하면서도 풋풋한 글맛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일기를 꾸준히 쓰던 학생이 아니었다. 방학이면 아버지 서재에 꽂힌 『삼국지』, 『이어령 전작 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그리고 세계문학전집 몇 권 정도가 나의 독서 목록이었다. 문예지나 순정 소설엔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내 문체는 늘 딱딱하고 건조했다.


대안으로 택한 것이 매주 주말의 야외 산책이었다. 하숙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인 부산 성지곡수원지. 수변 산책로를 걸으며, 여학생에게 보낼 편지의 문장을 다듬고 새로운 글감을 떠올리곤 했다. 때로는 길가에 퍼질러 앉아, 계절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수원지의 수면을 관조하기도 했다.

한때, 「수원지에 남겨둔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이 추억을 웹사이트에 올린 적이 있었다. 며칠 후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신의 글을 편집해 영상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게시한 점 양해를 구하며, 불편하셨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영상에는 단풍이 물던 어느 수원지의 풍경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내 글이 위로 천천히 스크롤되고 있었다. 절반도 채 읽기 전에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당시엔 글을 올리고 나니, 묵은 짐을 벗은 듯 한동안 홀가분했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우물을 다 퍼내도, 물은 다시 차오른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은 이제 불가역적이라는 현실을 떠올리며, 나는 속절없이 흔들렸다.


나중에 친구에게 얼굴이 궁금하다고 하자, 그녀는 ‘가을 여자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와 함께 씨줄과 날줄로 직조했던 고교 시절, 그리고 ‘청춘’이라는 이름의 앨범.


지금도 서울 어디보다 정겹게 다가오는 지명은, 단연 ‘답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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