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옥탑방에 옮겨놓고 보니 상황이 난처했다. 장롱이나 책장은 일찌감치 문전에서 퇴짜 맞고, 잡동사니를 넣은 박스들은 개봉도 못한 채 마루에 쌓여 있었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만이 겨우 입실을 허용받았다.
분양 아파트 마지막 중도금을 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아래층 방 두 칸짜리 전세를 빼고, 옥상의 단칸방에서 사글세로 지내기로 했다. 입주 때까지 넉 달만 버티자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퇴근해 집에 오니,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숙제를 핑계로 자기 책상만은 방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식구 넷이 발 뻗고 자기도 빠듯한 공간인데, 아들의 부탁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밝았다. 도시에 살면서 그날처럼 밤하늘을 가까이 본 적은 없었다.
‘아이들의 가슴에 별들을 안겨줘 보자.’
90년대 초, 45만 원을 주고 영등포 역사 상가에서 천체망원경을 샀다. 비싼 물건을 꼭 지금 사야 하냐는 아내의 투정도 있었지만, 아들, 어린 딸과 함께 망원경을 조립하는 자리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달이었다. 수많은 은백색의 분화구, 달 표면에 지구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미묘한 부분들, 아이들은 참았던 환성을 질렀다. 내 차례에 접안렌즈를 통해 내려다보는 달은, 어릴 적 우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 듯했다.
봄이지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였다. 호기심 많은 아들은 밤늦도록 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깨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걱정하는 아내의 눈빛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은 천체도를 펼쳐놓고, 주요 별자리와 화성, 목성, 토성의 모습까지 관찰했다. 렌즈로 어렵게 찾아내도 흐르는 개울 위에 뜬 물체 같았다. 그럼에도 아들은 몇 번 반복하더니, 내보다 손놀림이 빨라졌다.
천정에 별의 잔상이 아직 남았을까? 아들은 잠자리를 몇 번이나 뒤척인 후 고른 숨소리를 냈다. 나는 아이가 꾸는 꿈을 훔쳐보고 싶었다. 아들은 몽환적인 성운을 지나, 베일에 가려진 행성들 사이로 우주유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웜홀을 관통해 지구와 닮은 별에서 E.T. 와 만나 수다를 떨고 있을까?
그 나이쯤이면 또래 친구들에게 망원경을 자랑할 법도 한데, 아들은 끝내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어쩌면 난민처럼 살고 있는 모습이 싫었을 것이다. 그렇게 넉 달이 훌쩍 지나갔다.
일산신도시로 이산 온 뒤로는 아파트 숲에 가려 별을 관찰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새로 산 피아노나 컴퓨터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망원경은 장롱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중장년이 된 아이들이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할 경우가 생긴다면, 예전 시절을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별들 사이에서 나를 우연히 발견할지도 모른다. 광대무변한 밤하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성찰과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