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의 대 평상

by 소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외숙모는 부엌으로 향했다. 이내 외할머니가 그림자를 앞세우며 머리에 바구니 한가득이고 오셨다. 마당에서 흙장난을 치고 있던 내게 다가와 토마토나 참외 등을 건네는 분이다.

해가 지면 싸리문이 활짝 열렸다. 외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외삼촌은 쟁기를 맨 채 콧구멍 실룩거리는 순둥이 고삐를 잡고 들어왔다. 막내 외삼촌은 소 꼴을 담은 망태기를 내팽개치고 뒤뜰 우물에서 등목 하기에 바빴다.


후끈 달아오른 땅의 열기에 울던 매미도 지쳤는데, 마당은 사람 소리로 넘쳐났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면 대나무 평상을 펼쳤다. 외삼촌들이 마당으로 들고 나와 자리를 잡으면, 걸레질은 내 몫이었다. 호롱불은 마당 빨랫줄에 내걸고, 매캐한 모깃불을 피웠다. 식구들이 하나둘 평상으로 모여들었다.

그날도 외숙모는 칼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외숙모의 손놀림을 구경하는 것이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고, 홍두깨로 밀며, 밀가루를 뿌려 칼로 싹둑싹둑 썰어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칼국수가 완성되면 애호박과 바지락, 그리고 정성이 가득 담긴 국물이 곁들여졌다. 반찬은 뒤뜰 시원한 물에 종일 담가둔 열무김치뿐이었지만, 그 맛은 일품이었다. 외할아버지 상에서 먹다가 평상에 떨어진 국수는 미꾸라지보다 더 미끄러웠다. 고개를 들어보니, 온 식구들이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외할아버지는 긴 담뱃대에 불을 붙였고, 외삼촌들은 개천에 멱을 감거나 친구 만나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가끔 동네 아줌마들이 찾아와, 다음 날 아침 제삿밥 먹으러 오라거나, 동네 품앗이 문제 등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보고 싶지?’라며 내게 말을 거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는 뽀로통하게 돌아앉아 미운 아줌마들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렸다.

대나무 촉감이 시원한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은하수가 눈에 들어왔다. 누운 채로 양 눈 방향으로 자세를 바꾸니, 안개처럼 뿌연 자리에도 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숨을 죽여가며 세어야 제대로 셀 수 있는 게 재밌었다.

‘사각사각 사르르..’

옆 대나무밭에서 키질하면, 속절없이 파르르 떨든 여린 별들.. 계속 보고 있노라면 몸이 붕 떠오르듯 짜릿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별똥이 여기저기 계속 떨어졌다.


외할머니는 날 무릎에 눕히고 부채로 모기를 쫓아주셨다. 두 분이 두런두런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대나무밭의 맑은 바람 소리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러다 ‘타닥.. 타닥’ 모깃불 타는 소리만이 가물가물거리며 한 여름밤이 깊어만 갔다. 외가 식구들의 살가운 보살핌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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