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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산다

by 소운

우리는 여자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 후, 읍에서 헤어지지 않았다. 다 함께 버스를 타고 마을까지 나와, 정류장 옆의 다방에 들렀다. 술기운도 달랠 겸 잠시 차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 출입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우리 중 한 친구가 먼저 알아보고 손짓하며 불렀다.

“야! 너 유 아무개 아니야?”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동창이었다. 그는 부친이 선주였기에 학교 다닐 때부터 용돈 씀씀이가 컸던 기억이 났다. 자기 동네 친구가 내일 결혼한다며, 친구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부산에 살던 유 친구는 부친의 승용차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 시절, 자가용 운전자가 흔치 않던 때였다.

우리는 승용차도 타 볼 겸, 결혼을 앞둔 그 친구 집에도 같이 가기로 했다. 차는 새한자동차에서 나온 제미니였다. 우리는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차체를 만져 보기도 했다. 뒷좌석에 세 명, 앞 좌석에는 부산 친구와 두 명이 더 탔다. 창가에 앉은 나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했다. 초겨울 저녁 비가 추적추적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야산을 돌고 돌아 마침내 아래로 시원하게 뻗은 도로가 나왔다. 뒷좌석에 있던 한 친구가 소리쳤다.

“밟아라, 밟아!”


부산 친구는 맞장구라도 치듯이 가속 페달에 발을 올렸다. 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 끝은 농수로와 교차하는 작은 다리가 놓여있다. 그 다리를 넘어서면 왼편으로 급커브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음악 테이프를 고르려던 참이었다.


다리 위로 진입할 때, 나는 본능적으로 전방을 봤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오른편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평소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 순간, 의식은 슬로비디오를 보듯이 시간 굴곡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플라타너스는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가야 하는데, 왜 내 쪽으로 오지?’


이어서, 어떤 통증이나 공포심도 의식에서 끊어져 나갔다.

인지가 단절된 시공간으로 진입했다.


“아, 내 팔! 으흑!”


까마득한 동굴 끝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를 영민한 청각이 받아들였다. 이 신호가 불쏘시개가 되어 의식의 불이 다시 지펴지고, 마침내 눈꺼풀이 움직였다.

‘이 불빛은 뭐지?

가만히 살펴보니, 차 천정의 룸 램프를 내가 깔고 앉아 있었다.

‘아니? 지금 사고를 당한 거야?’ 진짜?’

어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창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다행히 먼저 빠져나온 친구들이 내 팔을 당겨주었다. 내 뒤에 한 녀석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차에서 빠져나왔다. 다 살아 있었고 중상자마저 없었다. 다만 나 혼자 인중과 턱 부분에 피가 나 있었다. 카 오디오를 조작하려다가 차 대시보드에 부딪힌 것으로 보였다.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다리 건너 첫 번째 가로수는 밑에서 40cm가량 남기고 반대편으로 부러졌고, 두 번째 나무는 찢어지며 반쯤 젖혀졌다. 차는 세 번째 나무를 긁은 후, 뒤집혀 논바닥에 전복됐다. 다행히 논은 도로보다 무릎 정도 아래에 있었다.


우리는 현장을 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정 여섯 명이 힘을 합쳐 뒤집힌 승용차를 들어 올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러진 가로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시동을 걸어보니 스타트 모터는 헛돌고, 엔진룸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보닛, 라디에이터 그릴, 우측 전조등이 엔진룸으로 밀려 들어오고, 우측 펜더와 지붕까지 심하게 손상되었다.

견인된 승용차는 다음날 폐차 처리되었고, 친구는 경위서와 가로수 보수비용을 부담한 후 부산으로 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음주 운전이었다. 다음날, 경찰서에서 우리를 불렸다. 모두가 멀쩡한 상태가 믿기지 않아서인지 손으로 몸을 툭툭 쳐보기도 했다.

지금처럼 음주 단속이나 벨트 미착용에 대해 엄격한 제재가 가해지던 시절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음주 운전의 위험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건이었고, 지금도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너 나 할 것 없이 너스레를 떤다.


“총각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세워질 뻔했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게 맞긴 맞아?”

“가로수가 영물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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