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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by 소운

부모님과 함께 연안부두에서 택시를 탔다.

“벌리 시외버스 터미널로 갑시다.”

내 가슴은 설레기 시작했다. ‘그래, 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보자!’


“야! 따라와 봐”

“왜, 뭔데?”


나는 형을 따라 대청마루로 나왔다. 아버님이 사용하시던 책장과 책상이 있는 곳이었다. 형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쏴르르’

형형색색 유리구슬들이 무더기로 굴러 나왔다.

“학생들한테서 빼앗아 놓은 거래.”

“우와~!”

나는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대여섯 살의 꼬마였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나들(여고생)도 우리처럼 구슬치기 놀이를 한다고?’

우리 집은 유리 창문이 많고, 외벽은 검은 나무판을 겹쳐 댄 구조였다. 한때 일본인이 살았던 적산가옥이었다. 대청마루에서 창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텃밭에는 각종 나물, 배추, 무 등이 심어져 있었다.

서너 마리의 닭과 토끼도 키우고 있어 어린 나에게는 볼거리가 많았다. 집 앞마당에는 향나무 두세 그루가 있었고, 그 사이에 아담한 화단이 있었다.

동생은 아직 어렸기에 혼자 마당과 화단을 보며 놀았다. 닭 볏처럼 생긴 맨드라미와 아침마다 활짝 피어나는 나팔꽃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붉거나 푸른 꽃잎을 건드리면 맺힌 이슬들이 또르르 굴려 떨어졌다. 키 작은 채송화는 강아지의 목을 쓰다듬는 것처럼 만지작거렸다.

아버님이 장작을 패던 부엌 앞은 벚나무와 개나리, 탱자나무 덩굴이 담장을 대신했다. 아래로는 동네 우물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까치발로 안을 들여다보면 깊지 않은 물에 자갈들이 아른거리곤 했으니 용천수 같았다.

우리 집의 아름드리 벚나무는 봄이면 우물 위로 연분홍 차양을 펼쳤다. 벚꽃이 지고 나면 영그는 빨간 버찌들, 입안에 굴리며 동네 골목을 뛰어놀았다.


“손님, 다 왔습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도시 변두리 지역이라 개발 속도가 느렸지만, 옛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동네 골목길, 가로수, 돌담장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로변을 따라 단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얼마 후, 우리가 찾아간 곳은 너저분한 마당 한쪽에 위치한 단층 슬래브 집이었다. 아버님이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머님과 나는 주변을 살폈다. 향나무는 사라지고, 화단이 있던 자리에는 회색 시멘트 벽이 세워져 있었다. 텃밭이 있던 자리는 시멘트 바닥으로 덮여 있었고, 절반은 헛간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그림 퍼즐을 맞추려고 해도 아귀가 맞지 않는 것처럼, 난감하고 혼란스러웠다. 40여 년이라는 세월이 간극을 교묘하게 비틀어 놓았다.


“비좁아 보이긴 해도 여기가 맞네.”


아버님 말씀에 어머니 얼굴에는 서운함이 역력했다. 식구 많던 시집에서 분가 후, 객지에서 사글세로 전전하다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었으니, 어찌 미련이 남지 않겠는가. 어머니 손을 꼭 잡고 큰 도로 반대편 옆문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자 집 담벼락에 시멘트 구조물이 보였다. 예전 우물이었다! 함석지붕이 슬래브로 바뀌었을 뿐. 넘치는 물은 여전히 옆 도랑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럼요, 아직도 약수처럼 먹어요.”


옆 평상에 앉아 있던 동네 할머니들은 우리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고단한 세월을 정화시키는 듯한 도도한 흐름 앞에 우리는 경외심마저 느꼈다. 그러나, 나에겐 타임머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추억은 퇴행할 수 있지만, 모든 사물에서의 시간은 불가역적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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