쏨뱅이
십여 년 전, 도시의 팍팍한 삶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내 가슴을 가장 설레게 했던 건 릴낚시 용품이었다. 섬이라 바닷가에 쉽게 닿을 수 있었고, 한 달에 서너 번은 어김없이 바다를 찾았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짭조름한 바다내음을 안주 삼아 캔 맥주를 기울이는 낙이 있었고, 황금빛 낙조에 온몸이 물들 무렵이면 ‘낙향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젊은 날처럼 돈을 들여 타는 배낚시나, 무인도 밤낚시는 내키지 않았다. 물고기가 덜 잡히더라도 안전하고 편한 방파제 낚시가 제격이었다. 간혹 아이들이 내려올 때면 밤낚시도 함께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엔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섬 남쪽 해안은 망망대해를 마주해 시야가 탁 트이고, 갯바위 지형도 잘 발달되어 낚시 명소로 꼽히는 곳이었다.
승용차를 몰고 그곳을 찾았다. 도로 폭이 좁고 알려진 관광지라 주차할 곳이 마땅찮았다. 해안가 펜션 마당에 겨우 차를 댄 뒤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주차비로 2만 원을 요구했다.
평일이라 붐비지는 않았고, 마침 괜찮은 자리가 보여 서둘러 짐을 풀었다. 천혜의 명소라 불렸지만, 물고기 씨알은 의외로 작았다. 그러려니 하고 이십여 분 지났을까. 제법 줄이 탱탱하여 ‘이거다!’ 싶어 릴을 감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라온 것은 10㎝ 남짓한 불그스름한 물고기였다. 유독 날카로운 등지느러미를 세운 모습이 처음 본 듯했다.
왼손으로 물고기 등을 잡고 입에서 낚시를 빼려는 순간, 칼에 베인 듯 손가락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날 세운 등지느러미에 찔린 것이었다.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욱신거렸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가락을 바닷물에 담그고 피를 더 쥐어짰다. 통증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서둘러 주위를 둘러봤다. 오른쪽 50여 미터 지점에 낚시꾼들이 보여 도움을 청했다.
“혹시 이 물고기 이름이 뭔지 아세요?”
“어? 글쎄요...”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내게 말했다.
“잘은 안 보여도 ‘쏨뱅이’ 같은데요?”
“쏨뱅이요?”
“그놈에게 찔리면 엄청 아파요.”
손가락 흔들고 꽉 눌려봐도 욱신거리기는 여전했다.
“좋은 약이라도 있어요?”
“그냥.. 오늘 밤만 지내고 나면 괜찮을 겁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라고?
‘좀 있으면 덜하겠지.’ 스스로 다독이며 낚싯줄을 다시 던졌다. 하지만 물고기는 뒷전이고 이 통증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부랴부랴 장비를 챙기고 남은 갯지렁이(청개비)를 그 사람들에게 넘기니 그들은 반색했다. 2만 원짜리 주차비를 내고 얻은 것이라곤 얄미운 쏨뱅이의 독침뿐이었다니!
서둘러 읍내 약국이라도 갈 볼 작정이었다. 해안 도로를 따라 차를 운전하는데 여전히 쓰리고 아파 창문을 내리고 왼팔을 뻗었다. 그나마 찬바람에 통증이 가시는 듯했다. 그런데 마주 오는 차 안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게 아닌가?
‘아차! 이건 아니다’
곧바로 아픈 손가락을 곧추세우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앞 필라(A-Pillar)를 잡았다. 이제 수신호로 착각하지 않겠지, 그제야 안도했다. 근데 이게 웬걸? 손가락 모양이 산 너머 머스깽이 같았다. 다행히 검지였지만, 하느님을 능멸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날 이후, 낚싯대를 다락방 모퉁이에 세워뒀다. 늘 보이는 게 바다인데 이제 와서 무슨 충동이 일어나겠는가. 물고기도 늙었는지 잡히는 것이 예전 같지 않고, 늘어난 낚시 금지 구역, 무엇보다 물고기가 잡히는 곳마다 어망이 가득했다.
요즘도 앞바다에 쏨뱅이가 휘젓고 다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