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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자리

by 소운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가 져도 열기는 가라앉지 않고, 새벽까지 에어컨을 켜는 날이 잦다. 예전에는 어떻게 이 더위를 견뎌냈던가.


한여름, 큰집이나 외갓집에 가면 대청마루보다 시원한 곳이 없었다. 걸쇠에 걸린 분합문 너머로 처마는 하늘 절반을 가리고, 널따란 마룻바닥 밑에서는 계곡물이 흐르는 듯 서늘함이 올라왔다. 뒤뜰에서 마당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늘 시원했다. 높다란 석축이 있던 큰집 뒤뜰, 작두펌프가 놓인 외갓집 역시 담장 너머로 가파른 고샅길이 이어져 있었다.


앞집을 철거한 뒤 그 자리를 어떻게 꾸밀지 오래 고민했다. 시멘트나 흙바닥은 일찌감치 배제했고, 파쇄석, 현무암 판석, 잔디 마당이 선택지에 올랐다. 결국 직접 관리할 수 있는 15평만 잔디를 깔고, 나머지는 합성목 테라스와 텃밭으로 나누어 스스로 ‘황금 분할’이라 자평했다.

주변에서는 요즘 대세가 현무암 판석이라며 주저 없이 권했다. 잔디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유지가 어렵다며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잔디를 고집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전통 한옥은 통풍과 채광을 중시해 잔디를 ‘사초(莎草)’라 부르며 마당에 들이지 않았다. 큰 나무도 마당 형상(口)과 더해져 ‘피곤할 곤(困)’ 자를 이룬다고 하여 꺼렸다. 하지만 책을 읽다 고개를 들 때마다, 학교 운동장의 푸른 잔디가 눈의 피로를 씻고 마음에 평온을 안겨주는 걸 나는 경험하고 있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천연 잔디 지표면의 평균온도는 인조 잔디나 아스팔트보다 절반가량 낮다. 식물의 증산작용으로 생기는 기화 효과 덕분인데 대기 온도도 섭씨 2도 이상 떨어진다. 대기 정화와 소음 감소,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기온 조절 기능까지 갖췄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용을 아끼려 사 놓은 롤 잔디를 직접 마당에 시공했다. 마지막에 네 평가량 부족해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뒷날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옆집은 지대가 40~50cm 낮았다. 철거 뒤 시멘트 바닥을 걷어내자, 옆집 주인은 물이 자기 집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해 달라며 거듭 당부했다. 나는 배수로를 따라가며 물구멍을 일일이 찾아 막았다.


며칠 뒤 새벽, 7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옆집 주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이 펄밭 됐다며 당장 와보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노부부는 축대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흙탕물을 가리켰다.

“저 정도 물로 마당이 펄밭이라니, 과장된 말씀 아닐까요. 나도 할 만큼 했는데 너무 몰아붙이시는 것 같습니다.”

순간 억울함이 치밀었지만, 결국 미안하다 하고 다시 살펴보겠다 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마당 끝, 흙바닥으로 남겨두었던 부분이 움푹 꺼져 있었다. 그곳으로 토사와 빗물이 흘러 축대 틈으로 새 나간 것이었다. 이런!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보수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 흙바닥 평탄화, 잔디 추가 시공, 물고랑 만들기, 담장 옆 배수 경사 조정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냈다. 온몸을 던진 작업 끝에 체중은 3kg이나 줄었고, 얼굴과 목덜미, 손등은 까맣게 타 있었다.


해 질 녘, 마당 나무마다 물을 주던 중 종아리에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긴 풀이라 여기고 개의치 않다가 내려다보니, 뜻밖에 여치 한 마리가 붙어있었다. 읍내 근린상가 한복판까지 어떻게 왔을까? 의아함을 넘어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마침내 환지본처(還至本處).


풀밭으로 돌아온 여치처럼, 나 또한 이 곳에서 ‘본래의 자리’를 찾은 듯했다.

폭염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서늘함을 내뿜는 잔디밭에서, 나는 삶의 진정한 가치와 평온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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