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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Feb 05. 2021

철부지

“왜 아침부터 투정이냐!”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도 안 들어주잖아요!”

“그래도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

 잔뜩 화가 난 어머니는 매섭게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뽀로통한 얼굴로 부엌을 나와 이층 방으로 올라갔다. 좀처럼 내게 화를 안 내는 어머니였는데 생각할수록 서러웠다.

‘그래!’

 작심하고 방 뒤에 있는 넓은 홀로 나왔다. 벽 쪽으로 나락을 넣은 가마니들이 줄지어 있고 홀 한가운데는 넓은 멍석이 깔려 있었다. 빈 가마니 두 개를 찾아들고 홀 가장자리로 갔다. 시멘트 바닥에 먼저 한 장을 깔았다. 신발은 가지런히 벗어놓고, 가마니 위에 드러누워 나머지 한 장으로 몸을 덮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딱 십문칠(안성맞춤)이다.    


‘이제부터 누가 와서 싹싹 빌어도 물 한 모금도 안 마신다.’

‘흥! 죽는 게 별건가. 이제부터 단식이다!’

 근래에 와서 형제들은 물론 부모님까지도 나를 외면하는 듯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랬다. 형 도시락은 반찬통이 밀폐 분리된 새 것으로 사주고, 반찬도 이것저것 가득 넣어주면서 나는 예전 그대로였다.

“형은 중학생이잖아.”

 어머니의 이 말씀은 내 귓전에만 맴돌 뿐이었다. 동생도 해달라는 것은 모두 들어주는 것 같지만, 나는 허구한 날 뒷전이었다.    


 콧등에 닿은 가마니의 촉감이 기분 나쁘게 싸늘했다.

‘난 이렇게 죽는 거야?’

 가슴이 울컥거리더니 관자놀이를 지나 귀 바퀴까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계단으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가볍고 빠른 걸음걸이다.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숨을 죽였다. 이층 방문을 여닫고 나서 홀 안으로 들어온다. 발걸음이 멈칫한다. 살금살금 뒷걸음질 소리와 함께 멀어져 갔다.

‘너는 작은 형이 이러고 있어도 걱정 안 되지?’

‘그래, 나중에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계단을 올라온다.

‘이번엔 또 누구야?’

 동생이 형을 데리고 올라오는 모양이다. 홀 입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뒤 되돌아갔다.   

 

 그런 후로는 조용했다. 그 많던 잠도 오지 않고,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래층에서 식구들이 식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거리며 숟가락질하는 소리. 배고픔이 서러움과 함께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씨, 난 끝까지 굶는 거야!’

 입술을 꼭 깨물었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호통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순순히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아버지는 학교 출근하기에 늘 바쁜 분이니까.   

 

 얼마 후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설마.. 아버지가?’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가오더니 가마니를 휙 걷는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뜻밖에 친근한 목소리로 나를 훑어보시더니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어? 이게 아닌데.’

 머쓱하게 서있자 등을 툭 치며 말씀하신다.

“어서 내려가 밥 먹어라.”

 반항의 몸부림은 고사하고 시늉조차 보일 겨를이 없었다.   

 

 큰방 한쪽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국을 가져와 상 위에 올려놓는다. 말없이 되돌아가는 어머니를  곁눈으로 훔쳐봤다. 양 눈가가 불그스름했다. 몇 숟갈 뜨지 않아서 밥알이 입안을 떠다닌다.   


‘내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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