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밤새 열이 내리지 않아 병원 응급실로 모셨다. 여러 가지 검사와 함께 수액 주사를 놓은 후, 결과는 기다리라고 했다.
응급실에는 어머님 외에도 서너 환자가 누워 있었다. 또 다른 환자가 이송되어 들어왔는데, 나이가 꽤 든 할머니였다. 입고 있는 가운을 보니 인근 요양시설에서 온 것 같았다. 구부려 세운 양 무릎은 성냥개비처럼 말라 임종을 앞둔 듯한 모습이었다.
조금 뒤, 친척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찾아왔다. 할머니를 몇 번 부르며 몸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의료진이 보호자에게 연락하라는 말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연락이 닿았는지 자리를 비웠다.
십여 분 지나고, 출입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한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마도 아들인 듯했다. 옷차림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야외 작업 현장에서 불려 온 것 같았다. 대뜸 큰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빨리 안 죽고 난리야!”
내 귀를 의심했다. 어머니가 들었을까 겁이 났지만, 치매 환자셨다. 곧바로 가슴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라왔다.
‘저게 아들이 맞아?’
그는 양손을 허리에 짚고 모친을 내려다보며 또 뭐라고 쏘아붙인다. 원무과로 가는 것 같았다.
만약 저 할머니가 조금 더 젊었더라면 뭐라고 했을까?
“그래, 우리 아들 미안하다. 내가 왜 이렇게 안 죽겠니?”
아니면 이렇게?
“이놈아! 너를 낳고 돌아앉아 미역국 먹은 내가 원수다, 원수!”
내가 귀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에, 이 희한한 풍경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이질적이고 삭막함을 넘어 슬픈 분노를 느꼈다.
요즘은 지방이라도 요양시설이나 병원의 접근성이 좋아졌다. 약제나 의료 서비스의 질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다 죽어가던 노인도 병원만 가면 멀쩡해져서 돌아온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퇴행성 질환은 몇 번의 고비를 맞기도 하고, 병원에서는 불시에 보호자를 찾기도 한다. 사는 게 팍팍하다면 부모의 의료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부모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분들의 사랑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