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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an 07. 2021

격리 해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간호사로부터 들어야 했다. 결핵균이 검출되어 1인실로 격리되었으며, 식구 전원은 신속히 감염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병원에서 객담, 혈액 채취에 응하고 비싼 인터페론-감마 검사비까지 지불해야만 했다. 가족이라도 가급적이면  문병을 자제하도록 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가겠으니 진료의뢰서 발급해 달라고 했다.


 ‘폐렴 입원 중 Sputum study에서 AFB 3+ 소견이 있어 w/u위해 전원 조치함.’ 결핵(TB)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도 항산균(AFB)이 많이 보인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형제들이 공유하는 단톡방에, 이런 내역과 함께 대학병원으로 전원 조치 중이라고 알렸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내일 모래 다들 문병한다고 메시지가 떴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넘겨서야 음압실을 잡을 수 있었다. 간호사실을 지나 복도 막다른 곳에 보이던 통제구역. 보호자도 써야 한다며 3M N95를 건네주는데, 방진 마스크와 유사했다. 3차례 순차적으로 문이 열리고 닫혀야 음압실로 진입할 수 있었다. 모니터와 침대 2개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구조다. 공조장치 탓인지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아버님을 음압실로 모셔놓고 간병인을 구하는데 한사코 거절한다. 난감했다. 복도를 배회하니 간호사가 음압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환자 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보호자실 없이 병실을 같이 사용하라고? 그토록 감염 위험을 경고하면서 보호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하란 말인가!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혹스럽기는  간호사 측도 마찬가지 같았다. 두세 사람이 나서서 설득한다. 더 이상 버텨봐야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았다.  

      

 기저귀를 봐드린 후 걱정이 들었다. 잡힌 강의 일정을 계속 취소하기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기침도 심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듯 주무신다. 나도 자다가 깨면 곧바로 모니터 데이터로 시선이 갔다. 새벽에도 간호사는 자주 드나들었다.  

  

 다음 날 아침 병실을 나서는데 간병인 같은 사람과 마주쳤다. 맞은편 병실을 청소하고 나오는 듯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저희 아버님도 같이 간병해 주면 안 되나요?”

나를 아래위로 한 번 스켄한다.

“제가 모시던 분이 조금 전에 퇴실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저도 집에 가서 쉬려고 하는데..”

“결핵 환자죠?”

“아뇨, 정밀 검사차 어제 입실했답니다. 간병인 구하기 너무 힘드네요.”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위험을 무릅쓰고.. 급하다고 하니까. 제가 잠시 쉬었다가 오후 5시부터 3일 간만 돌봐드리지요. 그 후로는 딴 간병인을 찾아보세요.”

“다만. 봉사료를 더 주셔야 해요.”

“그래요, 그렇게 하죠.”

“또 하나, 이 내용을 각서로 써주세요.”

“각서? 네.. 좋습니다.”

 각서라니.. 집사람에게도 좀처럼 안 써 주는 것을. 그러나 지금 그것을 논할 자리가 아니다. ‘각서’ 어휘가 너무 포괄적이라 ‘이행 각서’라는 이름으로 요구한 내용을 쓰고 서명했다.

 각서를 받은 간병인은 흡족한 듯 표정이 밝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여자분들은 남자가 쓴 각서를 좋아한다. 이 기이한 사실을.    


 하루 강의 일정이 마치면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인 대학병원을 찾았다. 나는 간병인이 두세 시간 쉬도록 배려했다.

 아버님은 특이 사항 없이 폐렴 치료를 잘 받고 계셨다. 젊은이들도 고통스럽다는 항결핵제. 투약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석션으로 뽑은 검체를 여러 차례 받아갔다.


 간호사실에 물어보니 객담 도말검사 1~2차 음성이 나왔고, 내일 다시 결과치가 나온다 했다.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대학병원에 온 이유다.


 3일째 되던 날, 간병인이 아버님의 검사 결과를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니 그렇다면 결핵이 아닐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간병비를 지불했다. 내 표정을 살피더니 내일부터 계속 맡겠다고 했다.    

 

 간호사실 호출을 받고 갔다. 기관지 내시경을 하니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한다. 남자 간호사와 함께 내시경실로 나섰다. 복도에 가운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비키세요! TB. TB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듯 의료진과 섞여 일반인들이 양쪽으로 물러선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할 때도 TB라고 말하자 타다 말고 다들 내린다. 신기했다.

    

 객담 도말검사 3회 연속 네거티브, 객담 TB-PCR 검사 네거티브, 기관지경 흡인하여 도말 검사 및 TB-PCR 검사도 네거티브였다. 의사들은 ‘PCR을 돌린다.’고 했다.


 10일째 되던 날 격리 해제되어 일반실로 나왔다. 항산균(AFB) 배양 검사(Culture)까지 나와야 하나, 고체 배지(배양기)까지는 8주나 소요되기에 그때 검사 결과지를 받으려 예약했다. 일반실로 온 후 이틀 만에 퇴원수속을 밟았다.    


 <요양급여 회송서>에 이러한 검사 결과치를 밝히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었다.

‘.. 결핵 가능성 매우 떨어져 격리 해제, 전원을 원하여 의뢰하니 고진 선처 부탁합니다.’    


 우리는 지욕 문 앞까지 갔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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