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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Oct 07. 2021

요양병원

 아버님은 폐렴과 결핵 의심으로 대학병원에서 10일 남짓 치료와 정밀검사를 병행했다. 다행히 결핵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는 진료 소견이 나와서 고향 병원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며칠 경과를 지켜본 후 요양원으로 다시 모실 생각이었다.     


 일주일 후 또 폐렴 증세가 나타나자 의사가 완곡하게 권유했다. 더는 미루지 말고 요양병원으로 모시라고.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적기 처치의 지연이다. 요양원에서 병이 의심되더라도 이송까지 시간이 비된다. 응급실에 도착해도 필수 검사, 입원 수속을 거쳐야만 의사 처치가 능하다.  

 둘째는, 급성기 병원에서 장기 입원은 근본 취지에 부합되지 않을뿐더러 병원 운영에도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수용하여 〇〇시 모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승용차로 채 한 시간이 안 걸리고, 낯설지도 않은 지역이다. 원무과 차장과 면담하면서 같이 시설 내부를 둘러봤다. 그런대로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건보 심평원에서도 나름 평가한 의료기관이다. 그날 원무차장과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이 병원에서 임종을 보는 분들도 있고, 결핵이 발견되어 타 병원에서 많이 돌아가시죠.”


 입원 수속 때 자세한 내용들을 기재하게 된다. 특히 위급사항 발생 시 보호자의 사전 의사를 묻는 기재란이 있다. 이 병원에서 임종을 볼 것인가, 전원을 원한다면 병원 명까지 써야 했다. 나는 촉박함을 고려하여 인근 급성기 병원으로 기재했는데 이게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담당의사와 간호사들의 친절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동안 의사는 서너 번 바뀌었는데 마지막에 만난 젊은 의사는 인상적이었다. 메로페넴을 사용하더라 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무 센 항생제이니 적절한 것으로 바꿔보겠다며 약제의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혈액 검사 후 모니터 데이터를 짚어가며 세세하게 설명하는데 세간에서 회자하는 3분 면담과 대비되었다.   

 다만, 간병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쉬웠다. 열 명이 넘는 환자를 한 간병인이 케어하고 때로는 중국 동포가 맡기도 했다. 나는 병원비 절감을 위해 소모품들은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필요한 양만큼을 가져다줬다.    

 

 입원 후 주 2회 아버님께 들러서 몸 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한 소모품도 확인했다. 폐렴이 몇 번 재발했지만 즉시 치료가 이루어져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났다.  

  

 장기 폐렴 환자는 검사기관에 객담을 세 차례 나눠 보내는 모양이다. 그중 하나가 결핵 양성이 의심되어 지정한 병원으로 전원 조치한다고 알려왔다. 옮긴 병원을 급히 찾아갔다. 1인실에 배정하고 나서 간병인이 선뜻 나서지 않으니 보호자가 직접 케어하라고 했다. 불과 1년도 안되어 유사 증상으로 대학병원에 다녀왔기에 적이 당황스러웠다.  


 그날 밤 항결핵제 ‘4제 요법’ 치료가 시작됐다. 객담 도말검사에서 한 차례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항결핵제 치료는 너무 조급하지 않으냐고 따졌다. 돌아오는 답변은 싸늘했다. 매뉴얼 따라 치료할 뿐이라고. 아니면 대학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받든가.     


 기존 드시던 약에 결핵약을 타니 붉은빛이 섬뜩했다. L-tube로 식후 주입하는데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항결핵제 치료, 한 번 먹으면 일정 기간 끊을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항산균 중에는 결핵균뿐만 아니라 비결핵균(NTM)도 있는데 선제적으로 항결핵제를 투약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가. 부정확하고 불필요한 항생제 치료일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물론 법정 전염병이고, 결핵 퇴치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엄중한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오랜 투병으로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다. 골칫거리 균만 보였지 환자의 상태는 보이지 않는가. 생각할수록 바닥에서 뭔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 병원에서 몇 달을 치료할지 모르겠지만, 아버님을 도저히 이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대학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앓은 이가 빠진 듯 신속하게 퇴원수속을 해줬다.    

 

 예전에 진료받았던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이송돼 왔다. 객담 도말, pcr검사까지 모두 음성이었다. 응급실 레지던트가 내게 말했다.

“작년에도 와서 검사했잖아요? 금방 결핵으로 드러눕지 않아요. 할아버지 항결핵제 처방하면 돌아가십니다.”    


그날 소견서는 명료했다.

‘현재 전염이 되지 않는 NTM 환자입니다. 배양검사에서도 NTM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MTB PCR: negative’    


 소견서를 근거로 요양병원으로 전원 하려고 하니 난색을 표했다. 알고 보니 급성기 병원에서 결핵 처방을 하는 바람에 질본이 매뉴얼에 따라 결핵 관리 환자  등록해 버렸던 것이다. 규정상 격리실이 없는 요양병원에서는 수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거쳤던 급성기 병원으로의 전원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대학병원 소견서를 들고 요양병원, 관할 보건소를 직접 찾았다. 요양병원 담당의사에게 부탁하여 진료 변경서를 관할 보건소에 제출도 했다. 그럼에도 8주가 소요되는 배양 검사(Culture)에서 최종 음성이 나올 때까지 격리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병원과 고향 첫 병원의 의사끼리 어렵사리 통화가 성사된 후 전원이 결정되었다. 지난번 양 병원 간의 전례가 적용된 것 같았다. 그렇게 집 가까운 병원으로 되돌아와 한 달 만에 고단한 숨을 내려놓으셨다.    


 불필요한 항생제 처치를 극적으로 무마함으로써 투약에 따른 고통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어찌하랴.. 기력이 쇠진한 노구를 여러 병원으로 전전하게 한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註)

*NTM(비결핵항산균: Nontuberculous mycobacteria)

*MTB(결핵균: Mycobacterium tubercul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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