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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ul 21. 2021

옛집

“야! 따라와 봐.”

“왜, 뭔데?”

 나는 형을 따라 너른 대청마루로 나왔다. 아버님이 사용하던 책장과 책상이 있는 곳이다. 형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쏴르르..’

형형색색 유리구슬들이 무더기로 굴러 나온다.

“학생들한테서 빼앗아 놓은 거래.”

“우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닐곱 살 밖에 되지 않은 나는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누나들(여고생)도 우리처럼 구슬치기를 해?’    


 마루에 유리 창이 유달리 많았고, 외벽은 교사(校舍)처럼 까만 나무판자로 겹쳐 댄 우리 집. 한때 일본인이 살았던 적산가옥이다. 성긴 돌담장 안 자그마한 텃밭에는 갖은 나물이며 배추, 무를 심기도 했다.

 서너 마리 닭과 토끼까지 키우고 있어 어린 나로서는 볼거리가 심심찮았다. 기다란 마당 앞에는 향나무 두세 그루가 서있고 그 사이마다 아담한 화단이 조성돼 있었다.     


 맨드람이

      -이병기

곱게 자라난다 맨드람 맨드람이

머리에 돋은 계관(鷄冠) 일어나는 불꽃 같어

욱어진 파란 닢들을 사르랸 듯하여라.  

   

 닭벼슬 같이 생긴 맨드라미며 아침만 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팔꽃. 빨갛고 푸른 마다 맺힌 이슬들. 설익은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하는 놈은 채송화다. 나보다 키가 작은 게 신기하여 강아지 목 쓰다듬듯이 만지작거려보기도 했다.       

툇마루를 내려서자마자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어 여간 편하지 않았다. 훗날 외가에 갔을 때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보고 나서야 우리 집 구조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님이 장작을 패던 부엌 앞은 벚나무, 개나리 그리고 탱자나무 덩굴이 우거져 담장을 대신했다.  아래로는 동네 우물이 내려다보였다.

 까치발로 안을 들여다보면 깊지 않은 물에 자갈들이 아른거리곤 했으니 용천수다. 우리 집 아름드리 벚나무는 봄만 되면 우물 위로 연분홍 차양을 펼쳤다. 벚꽃이 지고 나서 영그는 빨간 버찌들, 입안에 한참 굴리며 동네 골목을 뛰어놀았다.    


 앞집의 상냥한 아가씨는 어머님과 친분이 있었다. 집에 찾아오면 나와 두 살 아래 남동생을 늘 귀엽게 대해주었다.

 한 번은 마른 장작을 쌓아놓은 부엌 앞에 두 분이 선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화로가 있는 자리다. 불씨가 거의 꺼진 아궁이의 부지깽이를 동생이 가져 놀려고 했던 모양이다. 혹시 손에 데지 않을까, 아가씨 발등에 올려놓으며 천연스럽게 물었다.

“뜨거워?”

 화들짝 기겁을 하는 여자분과 순간 어찌할 줄 모르는 어머님, 형제간의 단골 레퍼토리로 회자되곤 한다.  

        

 아버님의 국립사대 졸업 후 첫 부임지였던 삼천포. 살던 집을 40여 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찾아 나섰다. 뱃길로 이십여 분이면 족한 거리가 그렇게 멀었다.   

 

부모님과 함께 부두에서 택시를 탔다.

“○○로 갑시다.”

내 가슴은 설레기 시작했다.

‘그래, 이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려 가보자!’    

 소도시 변두리는 개발 속도가 더뎠다. 그럼에도 그 시절 동네 골목길, 가로수, 돌담장들은 흔적도 없고 대로변을 따라 단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얼마 후 우리가 찾아간 곳은 너저분한 마당 한쪽에 단층 슬래브 집이었다. 아버님이 그 집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머님과 나는 주변을 살폈다. 향나무는 온데간데없고 화초들이 의지하던 돌담장은 회색 시멘트 벽으로 자리바꿈 하였다. 텃밭이 있던 자리는 시멘트 바닥으로 덮이었고 절반은 헛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 퍼즐을 맞춰보려고 해도 엇비슷할 뿐 아귀가 맞지 않는 것처럼 난감하고 혼돈스러웠다. 사십여 년이라는 세월이 간극을 교묘하게 비틀어 놓았다.   

  

“비좁아 보이긴 해도 여기가 맞네.”

아버님 말씀에 어머니 얼굴빛은 서운한 표정이 역력했다.

“애써 찾아오지 말 것을..”

 식구 많던 시집에서 분가 후 객지에서 사글세로 전전하다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었으니 어찌 미련이 없겠는가. 어머니 손을 꼭 잡은 채 큰 도로 반대편 옆문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자 그 집 담벼락에 시멘트 구조물이 보였다.

 예전 우물이다! 함석지붕이 슬래브로 바뀌었을 뿐.. 넘쳐나는 물은 옆 도랑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럼요, 아직도 약수처럼 먹어요.”

 옆 평상에 앉아있던 동네 할머니들은 우리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고단한 세월을 정화시키려는 듯 도도한 이 흐름 앞에 경외심마저 느꼈다. 지금도 주의를 기울이면 그 우물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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