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한쪽 팔이 없는 인형이 있는데, 한번 와서 볼래?”
외할아버지의 그 말은 어린 나에게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비밀스러운 초대장처럼 느껴졌다. ‘팔이 없는 인형도 있다고?’ 의아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외할아버지, 엄마, 동생과 함께 삼천포항으로 향했다. 선착장에 닿은 여객선은 위아래로 흔들렸다. 외할아버지는 먼저 배에 올라탄 뒤, 내 겨드랑이를 살짝 끼고 뱃전에 내려주었다. 엄마는 시선을 피한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저 궁금해하기만 했다.
‘뚜우~ 뚜~!’ 뱃고동이 울리자 배는 천천히 선착장을 밀어냈다. 엄마도 곧 탈 줄 알았던 나는 당황했다. 동생을 업은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왜 안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엄마가 함께 가지 않는데 내가 왜 외가에 가야 하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숨이 넘어갈 듯 울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엄마를 향해, 고사리손을 허둥대듯 내저었다.
삼천포항을 벗어나자, 외할아버지는 울음을 달래며 나를 객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고집이 센 아이인 줄 모르고 계신 듯했다. 주변 승객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체면을 차릴 상황도 아니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은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를 쳐다보며 속삭이기 시작하자, 외할아버지는 다시 나를 뱃전으로 데리고 나갔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배 중앙, 기관실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에 앉혔다. 시커먼 기계들이 쉼 없이 움직이는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지만, 호기심은 이내 사라지고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목이 터질 듯 울어 보았지만, 기관실의 굉음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난생처음, 나는 거대한 괴물과 마주하고 있었다.
무모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희미한 불빛 속에서 분주히 일하는 선원들, 엄청난 기관실 소음과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는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그때야, 외할아버지는 호주머니를 뒤져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한입 가득 담배 연기를 배의 연통처럼 내뿜었다.
멀리 보이던 섬이 점차 가까워지자, 여객선 엔진은 출력을 낮췄다. 배 옆을 따라다니던 물살이 역겨운 포말을 일으켰다.
어디선가 나타난 조그만 나룻배가 우리 배에 바짝 붙었다. 우리와 몇 사람들이 나룻배에 옮겨 타고 섬 해안으로 향했다. 노를 저을 때마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나는 중심 잡기에 급급했다. 서러움을 다 토해낸 탓일까. 울음도 엄마 생각도 점차 시들해졌다.
해안에 닿자, 마중 나온 막내 외삼촌이 나를 번쩍 들어 목말을 태웠다. 그때부터 내려다보는 세상이었다.
한적한 시골길은 버드나무 가로수가 춤추듯 이어졌다. 나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걸었다. 싸리문이 열리고 덩굴나무 아치를 지나 외가 앞마당에 이를 때까지.
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었다. 외가에서 인형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팔 하나를 잃은 인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