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by 소운

나는 잠에서 깨어나 큰방 앞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마침 외양간 앞에서 둥우리와 낫을 챙기던 외삼촌이 나를 발견하고 물어봤다.

“나랑 같이 소꼴 베러 갈래?”

나는 대답 대신 눈을 비비며 축담에 있는 신발을 찾아 신었다. 아침 식사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어깨에 둥우리를 둘러 맨 채, 소고삐를 잡고 골목으로 나서는 외삼촌. 나는 뒤를 쫄랑쫄랑 따랐다.

“너! 소 몰 자신 있어?”

“네!”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나는 싫지 않았다.


외삼촌이 내 손아귀에 쥐어준 것은 고삐뿐만 아니라, 우직한 소걸음과 거친 숨소리도 함께 넘겨주었다.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걸음으로 소를 따라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겁먹으면 안 돼.’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돌담장 길을 벗어나 마을 뒤편 고개로 올랐다.

자고 일어난 아침 해가 가을걷이 끝난 들녘 여기저기를 훔쳐보고 있었다. 논두렁을 따라 소를 모는데, 고무신 안에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들렸다. 풀에 맺혔던 이슬이 깨지는 소리였다.

외삼촌이 발길을 멈추었다. 논두렁에 난 풀을 소에게 먹이라고 했다. 다랑이 논 두어 개 아래로 성큼 뛰어 내려간 외삼촌은 그곳에서 소꼴을 베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우그적”

풀을 뜯어 씹는 소리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소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논바닥에는 새들이 내려앉아 뭔가를 쪼아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소꼴을 베러 내려간 외삼촌이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이쯤에서 소를 몰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고삐를 잡아당겼다.


“어라?”

소는 끄떡도 하지 않고 풀만 뜯고 있었다. 용을 써서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소는 머리를 허공에 치켜들고 좌우로 크게 휘젓는다. 이어 제자리에서 한 번 솟구치더니 곧바로 덤벼들 기세였다.

“헉!”

나는 주춤하며 뒷걸음을 쳤다. 일곱 살배기 꼬마가 가소롭기 그지없던 모양이었다. 소는 콧김을 두세 번 세차게 내쉰 후, 신경질적으로 풀을 다시 뜯었다. 고삐를 잡은 손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왜 소가 난리를 피우냐?”

뒤를 돌아보니 외삼촌이었다.

“저기.., 소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왔다. 난생처음 해보는 거짓말이었다.

“씨~! 외삼촌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는 게.”

나는 비 맞은 중처럼 중얼댔지만, 외삼촌에 의해 되돌아가는 순둥이는 들은 척도 아니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외가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