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운 Jun 06. 2022

두릅이 나는 계절

 

 한 달 보름 남짓 이어진 땅두릅 농사. 그 힘겨운 대장정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칼을 바구니에 내던져놓고 나무 그늘 아래 펼쳐 둔 의자에 풀썩 앉았다.

     

 붉은 꽃잎 사이사이 그윽한 향이 넘쳐흐르던 홍매화. 이젠 무성한 잎들이 돋아나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서너 이랑 작업을 하고 나면 허급지급 찾아오는 쉼터다. 이 자리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주변 산들과 녹음이 보이고, 바람과 새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산 정상을 넘나드는 구름이 마침내 흐르기 시작한다.

  

 두릅이라 하면 개두릅, 참두릅, 땅두릅 등이 있으나 땅두릅은 나무가 아닌 여러해살이 풀이다. 3~4년 이상 채취하면 줄기가 가늘어지거나 뿌리가 죽기 시작한다. 이때 분주(分株) 또는 모종을 심지 않으면 다음 해 수확량은 물론 상품성까지 떨어지는 속성이 있다.

     

 500평이 조금 넘는 밭이지만 한 번에 다 심지 않고 4년에 걸쳐서 분주를 했다. 그러다 보니 빨리 심은 자리부터 드문드문 빈자리가 드러나는데, 영악한 잡풀들이 경쟁하듯 뛰어든다. 물론 한두 해는 빈자리를 찾아다니며 분주를 했지만 작년부터는 그마저 포기했다. 나이가 들면 이처럼 너그러워지는가.

     

 두릅은 잎보다 줄기가 튼실해야 상품성을 높이 쳐준다. 싹이 트기 전 고랑의 흙을 퍼서 이랑을 두툼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무의 일종인 개두릅(엄나무)이나 참두릅은 그래도 서서 채취한다. 땅두릅에게는 엄감생심이다. 한쪽 무릎이라도 구부리는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면, 육신을 호락호락 드러내지 않는다. 치사하고 꼴불견이라고? , 양 무릎을 펴고 작업할 수도 있다. 며칠 가지 않아 허리의 곡소리를 감내할 수 있다면야.

     

 매일 밭에 나가서 얘들을 친견하지 않으면 줄기가 억세서 품질이 떨어진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채취를 위해선 파묻힌 부위의 흙을 손가락으로 파내 보는 공정이 선행돼야 한다. 뿌리 가까이 근접하여 칼로 자르기 위해서다. 연륜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흙을 파보지 않고도 칼을 들이댄다. 생각하고 나서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역이 가능하다는 프로 사진작가들처럼.

     

 얘들도 말은 못 하지만 엄연한 생명체다. 제때 잎을 펴야 하는데 고약한 인간이 여린 순을 마구 잘라대니 식물 노릇도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같은 부위에 두세 번 칼이 들어오면 얘들은 생존전략을 바꾸기 시작한다.

 콩나물시루 나물처럼 여러 가닥 가늘게 올라오는 녀석. 진초록에 뻣뻣하게 올라 누가 봐도 식감 떨어져 보이는 녀석. 심지어 줄기는 안 드러낸 채 잎사귀만 안테나처럼 펼치는 녀석들이 난무한다. 어찌하던 마()의 성장기를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공생하기 위해 이쯤에서 칼을 거두어 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년을 기약할 수 있다.

 

 올해도 두릅 농사 외는 모든 일정을 미루어둔 채 올인했다. 쿨링 박스에 먹거리를 챙겨 점심은 밭에서 해결하고, 아내는 직장 관계로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힘을 보탰다. 가끔 내게 투정도 했다.

 왜 자주 쉬냐, 엄처시하에 대놓고 말은 못 해도 풀타임과 파트-타임의 차이를 몰라서다.

     

 산의 정상은 북쪽으로 솟았고 산자락에 이르러 동쪽으로 완만하게 경사가 진 곳에 밭이 자리한다. 소나무 군락, 활엽수가 무성한 앞산은 논 대여섯 마지기 건너 개천을 밟고 우뚝 서있다. 그리고 두 산을 잇는 여러 봉우리들이 북동쪽으로 병풍을 두르듯 에워싸 이곳이 육지라는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남쪽으로 보이는 들판을 빼고 산으로 에워싼 곳이지만 하늘은 늘 열려있다. 신부의 면사포나 생선 비늘을 보이다가 어느 날은 새털처럼 펼쳐 보이고 오늘은 양 떼들을 몰고 나온다.

     

 오호호호’, ‘오호호호’, 늘 재롱을 떨던 등검은 뻐꾸기 울음소리. 올봄은 들을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소쩍새는 사나흘 슬피 울다 종적이 묘연하고, 산비둘기, 뻐꾸기 울음만 자주 들렸다. 호흡을 내려 물끄러미 아랫배에 집중하고 있는데, 꿩 한 마리가 수다스럽게 울며 날아간다. 앞산도 놀랐는지 쩌렁쩌렁 소리를 되돌려 보낸다.

 

 내년 봄까지 입안에서 감돌던 쌉싸름한 향(사포닌)을 어찌 잊으랴. 산채(山菜)의 제왕은 생채기 난 몸 추스르고 이제는 쑥쑥 자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비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