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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Mar 20. 2022

봄비 예찬

 문득 새벽잠을 깨우는 이가 있다. 귀 기울어보니 창밖에 소곤소곤 봄비가 내린다. 베란다 난간과 앞집 양철지붕만 아니었더라면 눈치 채지 못할 뻔했다.

     

 오십 년 만의 기록적인 겨울 가뭄이라 했다. 그 끝자락에서 단비는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어둠 뒤에 숨어 내린다. 가람 이병기의 시구, ‘어둔 새벽부터 시름없이 내리는 비/ 내일도 내리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처럼 시름없이 내리는 비가 아니다. 그렇게 온다면 모든 이가 염치없고 뻔뻔하다 손가락질하지 않겠는가.

     

 봄비 내리는 날은 안온한 리듬감 탓인지, 묘한 기시감에서 헤어날 수 없다. 어쩌면 어머니 품에 안겨 잠들 때 자장가와 등 토닥토닥 두드리던 소리가 그랬을까. ‘무던히 살아내느라 애썼네, 내가 그걸 아느니..’ 어떤 나직한 목소리도 귓전을 두어 번 감돌다 만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중얼거렸다.

내일도 내리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말했다. 농경사회였던 동양도 그 궤를 같이하여 오행의 개념 안에 포함하고 있지 않던가.

 가령, 하늘에서 비가 먼저 내려(天一生水), 고인 물이 수증기 돼 오르고(地二生火), 그 기운으로 초목이 자라게 되니(天三生木)..

 서양 사람들은 비를 확인할 때 손등을 내밀지만, 우리는 손바닥을 내밀만큼 경배함이 무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입춘이네!’ 나팔수, 벽제꾼 앞세우고 원님 행차하듯 해도 우수, 경칩이 지나도록 청천 하늘 입 꼭 다물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음 절기 춘분을 안 넘기고 가까스로 이렇게 단비가 내리니 땅두릅 농사짓는 나 또한 반갑기야 오죽하랴.

 귀향하여 몇 가지 작물을 키워봤지만 땅두릅으로 올인 하기는 올해로 육 년차. 아직도 얼치기 농부다. 몇 주 전 소형관리기로 이랑을 갈아놨지만 흙이 모래처럼 흩날려 닭 물 먹듯이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두릅 뿌리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새하얀 속살에 연보라와 초록의 오묘한 조화, 휘감아 도는 쌉싸름한 두릅향이 벌써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일 년 중 두어 달에 걸쳐 두릅 체취라는 노동 강도가 집약돼 있기에 어찌 보면 양반 농사다.

     

 빗줄기가 조금 성기는 듯해서 마당 옆 화단으로 가봤다. 아니나 다를까, 내린 비가 화단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 청매, 백매의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개울 위 메밀꽃 피듯 하고, 간지러움에 견디다 못한 동백 꽃봉오리들도 낙화해 널브러져 있다.

     

 매화꽃 절반 이상 어내다 보니 갈색의 꽃받침들이 뒤섞여 우중충 가지에 매달려 있다. 일일이 확인이야 어찌해보겠느냐 만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아닌 수술암술 상열지사가 이미 비밀스레 이루어졌을 터. 시치미를 뚝 떼고 있으니 짐짓 모른 척할 뿐이다. 

 얼마 후면 튼실한 결과물이 맺힐 것이고 노르스름 익어갈 무렵, 또 한 번 매화의 깊은 향에 젖어들 것이다.     

  

 굵어진 빗줄기를 피해 뒤로 물러서서 살며시 손바닥을 내밀어본다. 간지러움과 함께 이야기 씨들도 간간히 섞여 내린다. 봄이 온다. 세상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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