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학이 이어지고 있다. 곧 개학할 것처럼 1주, 2주씩 미뤄지더니 결국 온라인 개학까지 왔다. 길어진 방학으로 생활 패턴이 느슨해졌다. 언제 이렇게 늦잠을 자보겠냐고 너그럽게 봐주던 것이 한계에 달했다.
중2가 되는 큰딸은 늦게 자든 말든 내버려둬야 하는 시기이고, 종달새 과인 6학년 작은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그냥 두면 자정을 넘겨도 안 자려는 2학년 막내아들을 타깃으로 일찍 재우기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처음에는 태블릿 pc로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틀어주고 들으면서 자라고 했지만, 너무 재미있어 하는 바람에 재우는 데 실패했다. ‘읽어주기’ 기능을 끄고 직접 읽어주기로 했다. 평소의 장난기를 지우고 최대한 조용하고 졸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는 듯했다. 빠르게 잠들길 바라며 아이가 관심 없는 분야만 골라 읽었다. 지루해서 하품이 나왔다.
나에게만이라도 재미있는 건 없을까 찾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골랐다. 아들은 재미없다며 뒹굴뒹굴하다 쉽게 잠들었고, 나는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신화 이야기를 즐겼다.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며칠 동안 나눠서 읽었더니 제발 다른 거 좀 읽으란다. 작은딸도 같이 듣겠다고 해서 《한국사 전집》을 골랐다. 발해, 신라를 훑으니 역사는 지루하단다. 이러다 역사 자체를 싫어할까 봐 다른 걸 검색하다 눈에 띈 책이 《어린이 성경》이었다. 최근 교회에 몇 번 나갔던 작은딸의 눈높이와 맞겠다 싶어 읽기 시작했다. ‘노아의 방주’ 부분이 나왔을 때였다. 문득 우리도 지금 코로나로 인해 방주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아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가족이 방주 안에서 떠돌며 먹고 자고 생활했을 생각을 하니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집 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생활은 그럭저럭 살만한 게 아닌가 싶었다. 방주는 네모난 배라지만 그런 어마어마한 홍수에도 살아남으려면 잠수함 수준은 되어야 할 테니 배를 만드는 것만도 보통 일은 아니었으리라. 배에 식량이며 필요한 물품을 실었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배 안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줄어드는 식량과 그치지 않는 비를 보는 그들의 절망감은 상상 이상이었겠지. 그런 생활을 신앙심만으로 이겨냈다니 노아가 선택받을만한 인간이긴 했나 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꽤 괜찮은 방주 아닌가.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로 팬데믹 상황에 부닥친 인류를 보면 어떤 거대한 힘이 생태계를 위해 이기적인 인간을 대량 학살하려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나로선 하느님의 뜻은 알 수 없었고, ‘지구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인가’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미세먼지가 줄었다는 기사를 보면 지구가 살기 위해 인간의 개체 수를 줄여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만 같았다. 실제로 아이들과 잠깐씩 산책을 나가보면 하늘이 눈에 띄게 맑았다. 그나마 바이러스가 아이들에게는 영향을 덜 미친다니 지구가 나름대로 선별하여 자비를 베푼 것인가.
코로나 유행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잘 대처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국경을 막고 우리나라 홀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할 수 없는 시대이니 전 세계가 안정되려면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긴 하다. 그래도 우리 집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서울시 재난 기금을 제로페이로 받아 동네 마트에서 모처럼 아이들을 위한 메뉴로 장바구니를 채우다 보니 노아가 방주 안에 식량을 쌓을 때 이랬을까 싶었다. 착잡하면서도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다. 늘 어수선했던 집안 분위기는 온라인 개학 이후 약간은 규칙적이고 차분해졌다.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방주 안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이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이번 코로나 사태 내내 반듯한 자세로 침착하게 대응해온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코로나 19가 유행과 완화를 반복하다가 겨울철이 되면 바이러스가 생기기 좋은 환경에서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라고 했다. 개학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다시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거다. 어쩌면 코로나 20, 21, 22가 계속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삼 남매는 우리 집이라는, 나아가 대한민국, 지구라는 방주 안에서 삶을 이어갈 거다. 지구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공존할 방법을 찾으면서 말이다. 다른 집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