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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Nov 20. 2021

삐딱한 임하 씨네 낯선 인물들

-임하 콩트에세이⟪삐딱한 임하 씨의 삐딱한 일상⟫


  2015년 겨울 첫 수필집 ⟪가면의 꿈⟫을 냈던 소설가 임하 작가가 2018년 봄, 두 번째 수필집 ⟪삐딱한 임하 씨의 삐딱한 일상⟫을 냈다.


  문학 작품에서 작가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 중 하나가 ‘낯설게 하기’라면 이 작품은 첫 페이지부터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낯설면서 재미까지 있으니 말이다. 어쩐지 못마땅한 표정의 작가가 짝다리를 짚고 선 캐리커처가 그려진 표지를 지나 목차를 후루룩 넘기고 나니 ‘등장인물’ 소개가 나왔다. ‘소설도 아닌데 등장인물?’이라는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다운 나 씨’, ‘여전히 질풍노도 씨’, ‘산본 인어 씨’ 등의 등장인물 소개에 호기심이 동했다.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은 소설 속 인물인 양 이야기를 이끌며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켜 주었다.


 


  “엄마, 이제 됐으니까 학교 끊어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주일째 되던 날, 임하 씨의 작은딸 여전히 질풍노도 씨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현관 앞에 내던진다.


  입이 떡 벌어진 임하 씨. 학교는 학원이 아니라 마음대로 끊었다간 부모 모두 쇠고랑 차고 감옥 간다는 무시무시한 설명을 들은 뒤에야 어렵사리 납득한 여전히 질풍노도 씨. 다행히도 대학까지 무사히 다니고 있다. (중략)


  “일류학교는 아니지만 뭔가를 공부하고 내가 클 수 있는 곳이 학교라면, 나는 이 학교에 잘 온 것 같아. 여기서 나랑 똑같은 질풍노도의 친구들과 함께 부딪히고 뒹굴면서 나도 부쩍 자랐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이젠 나를 ‘생의 안정권에 접어든’ 씨라고 불러줘!”


  (중략) 하지만 불러달란다고 그대로 불러주면 삐딱한 임하 씨가 아니다.


  “하는 거 봐서-.”


<여전히 질풍노도 씨> 부분


 


  임하 작가가 담아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어차피 에세이-수필-이라는 장르가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쓰는 것인데 이게 무슨 얘기인가 갸웃할 것이다. 흔히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며 ‘현실 같다’는 얘기를 한다. 분명 만들어낸 이야기인데 실제 일어난 일인 양 안달하며 집중하고 감동을 한다.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쓰는데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면에서 삐딱한 임하 씨는 마치 소설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애정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그들의 속 깊은 인생을 독특한 시선으로 담았기 때문이다.


  사실 출판기념회에서 작가와 대화를 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며 발제를 하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임하 선배 글 어려운데?’가 먼저였다. 첫 수필집인 ⟪가면의 꿈⟫을 읽으며 어려워했던 기억으로 인한 쓸데없는 기우였다. ⟪삐딱한 임하 씨의 삐딱한 일상⟫은 한 편의 소설처럼 신나게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예쁘게 봐주기 바라고 좋은 모습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그런데 작가는 삐딱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며 세상을 보는 시선까지도 삐딱하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읽고 난 독자의 시선은 삐딱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세상을 제대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삐딱한 세상을 바라보는 임하 씨의 똑바른 시선’을 시원하게 그린 글이다.


 


  “야! 왜 꽁초를 길에다 버리고 그래. 여기, 지금 할머니가 꽁초 주우시는 거 안 보여?”


  함께 담배를 피우던 사내가 임하 씨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었다. 그런데 야단 맞은 사내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할머니가 사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버려도 돼요오-.” (중략)


  “그게…, 버려달라는 게 아니라 버려진 게 좀 있으면 우리도 힘껏 주워 가서 푼돈이라도 벌어 쓰려고 그러지요.”


  사내들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도 몇 초 간은 서로의 눈만 마주치고 섰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최면에서 깨어난 듯 야단을 치던 사내가 먼저 제 손에 쥐고 있던 담배꽁초를 할머니가 쥐고 있는 쓰레기 봉지 속에 집어넣었다. (중략)


  오글거리는 공익광고라도 한 편 찍은 것처럼 임하 씨가 몸서리를 치며 제 글에 서둘러 마침표를 찍었다.


<거창한 상생> 부분


 


  오가다 보는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고 재미난 스토리로 엮어내고, 그 안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장기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거창한 상생>에서는 사소한 사건으로 제목처럼 거창한 상생에 대한 문제까지 설문 조사하듯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가며 생각하게 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거창한 잔소리를 들은 양 입을 삐죽 내밀었을 텐데, 마무리하는 한 문장이 추가되니 ‘역시 삐딱한 임하 씨일세.’ 하며 오글거리는 앞 내용을 되짚게 됐다.


  에세이는 시나 소설보다 재미가 덜하다는 편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후루룩 읽히는 신나는 속도감에 한번 놀라고 독자에게 남겨진 사유의 몫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물론 에세이-수필-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필독(必讀)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니가 살아보니까 어떻디?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디? 쉬워? 쉽지 않은데 왜 사람살이에 대해 쓴 수필은 쉬워야 한다는 거야? 다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이 어째서 시나 소설보다 더 쉬워야 한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라는 작가의 말에도 공감하고, “말하고 싶은 그 거창한 주제들을 쉽고 재미나게 쓸 수는 없”냐는 ‘여전히 질풍노도 씨’의 말에도 약간, 아주 약간 더 공감하는 못난 후배가 쓴 글로 인해 임하 작가의 삐딱하지만 반듯하고 멋진 작품에 누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2018.8. <한국산문> 회원 신간 읽기 코너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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