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통이 넘치는 그날까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버스킹 가수로 활동하는 사람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됐다. 그곳은 라이선스가 있어야 버스킹을 할 수 있고, 공연할 수 있게 정해진 공간이 있으며 카드리더기가 있어 팁을 카드로도 받았다. 사람들은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버스카드로 교통비를 결제하듯 팁을 주고 갔다. 동전이나 지폐를 넣을 수 있는 동전통도 있었다. 그 가수는 버스킹을 3회 하고 880파운드(대략 한화 140만 원) 정도를 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거리공연을 하는 가수가 많지만, 생업이 될 정도는 아니다. 동전통이나 악기 케이스를 두고 공연을 하면 거기에 간혹 돈을 넣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생계가 유지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버스킹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내가 본 유튜브의 가수가 특이한 경우일 수 있지만, 그런 환경이 있다면 굳이 한국을 고집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 유튜브 댓글에 ‘돈을 벌자는 건지, 꿈을 이루자는 건지’라는 말이 있었다. 그걸 보고는 더 놀랐다. 왜 꿈은 돈과 반비례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외국까지 날아가 자신의 노래로 생활비를 버는 사람을 비꼬는지 심리는 무엇인지. 그 외는 대부분 긍정적인 댓글이어서 놀란 마음은 곧 가라앉았다.
브런치 스토리라는 글쓰기 콘텐츠를 알았을 때, 나는 내 글을 올리면 여러 사람이 봐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네이버 블로그나 카카오스토리와는 다르게 작가 심사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 검증된 글이 올라올 것이고 단단한 독자층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도 있었다.
두 번의 도전 끝에 작가 등록을 했으나 조회 수는 많지 않았다. 내 글은 소위 말하는 먹히는 글이 아닌 듯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에도 떨어지고 나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흥미를 잃고 브런치는 던져두었다. 어쨌든 글은 계속 썼고, 아르코 문학지원금을 받아 책을 냈다. 그러나 여전히 무명작가이고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은 나와 무관했다.
다시 브런치 스토리로 눈을 돌렸을 때, 이 콘텐츠가 무명작가들의 무대가 되어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응원하기’ 기능 때문이었다. 크리에이터 배지를 받은 사람은 이 기능을 활성화해서 수익창출이 가능했다. 버스킹 가수들이 동전통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것처럼 ‘응원하기’ 버튼을 앞에 두고 글을 올리는 것이다. 글이 마음에 든 독자는 금액을 선택하고 얼마간의 돈을 넣어 줄 수 있다. 버스킹 작가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았다.
다시 글을 올리며 연재를 시작했고, 몇 주 후 스토리크리에이터 배지를 받았다. ‘응원하기’ 기능을 쓸 수 있었다. 나는 브런치 스토리의 안내에 따라 기능을 활성화했다. 물론 내 글에 감동해서 동전을 던져준 사람은 아직 없다. 다만 내가 글 쓰는 일로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홀로 감격할 뿐이다.
내 꿈은 늘 전업 작가였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내 업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최소 생계비는 필요했다. 많은 돈을 벌어본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딱 먹고 사는 정도만 되는 일을 늘 찾아다녔다. 나머지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산에 들어가서 자급자족하며 산다 해도 종이와 펜, 혹은 컴퓨터를 연결할 인터넷 비용과 전기세는 들어갈 것 아닌가.
글 쓰는 사람은 왜 배곯아야만 예술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SDU 강의를 들을 때, 시인인 어떤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했었다. 자신이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배반감을 느끼며 어떻게 시인이 잘 살 수 있냐고 물어본단다. 시에서 가난한 마음을 노래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자신이 그냥저냥 먹고살 만한 걸 왜 불만스럽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브런치 스토리 내에서도 ‘응원하기’ 기능이 글 쓰는 이들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우려를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글쓰기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고 그로 인해 완성된 작품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받는 것이 문학의 순수성을 해친다면 글 쓰는 사람은 모두 공기만 마시고 살 수 있는 요정 내지는 정령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어떤 나라에서는 노래를 듣고 그 가치에 대해 팁을 내는 것이 당연한 문화겠지만, 우리나라는 거리의 예술가는 가난한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그 가치에 돈을 지급하는 것에 인색한 문화이다.
그나마 가수는 대박 나서 꿈을 이루고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제법 많아졌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방송사마다 경연대회가 늘어났으니 말이다. 어디서 그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자꾸자꾸 나오는 건지, 경연대회가 시즌 2, 시즌3까지 이어져도 새로운 사람이 자꾸 나온다.
이에 비해 작가는 데뷔 무대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브런치 스토리를 보면 노래 잘하는 사람 못지않게 글 잘 쓰는 사람은 천지삐까린가 보다. 무명작가들이 모인 자리다 보니, 직업이나 프로필도 다양하고 따라서 글의 소재도 천차만별이다. 자신을 하이브리드 이과라 지칭하는 한의사,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에세이를 올리는 변호사, 교사, 경찰, 화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와 관상가에 무당까지 대한민국의 직업 세계가 여기 다 펼쳐져 있나 싶다. 그러니 그들의 글이 다 각각의 특징이 있고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내놓는다. 평범한 주부와 회사원도 많고 나처럼 작가의 꿈만 보고 달리는 사람도 많다. 아픈 이야기와 사연을 가진 사람도 많이 모여있다. 가족이나 본인이 암이나 희소질환을 앓는 사람도 많고, 우울증 등 마음병을 가진 사람도 많이 모여있다.
그래서 브런치 동전통의 이름은 ‘팁’이 아닌 ‘응원하기’인가보다. 여기 모인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쓰기도 하지만,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고 ‘응원’을 한다. 이 ‘응원’의 힘으로 브런치 스토리에서 글을 시작한 작가가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고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예도 있다.
웨스트민스터의 가수가 나온 유튜브의 마지막 즈음에 그의 노래를 듣던 영국 TV 프로그램 캐스팅 담당자가 명함을 건네는 장면이 나왔다. 그가 무사히 캐스팅되어 지금보다 더 큰 무대에서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쳐보길 바란다.
얼마 전 모든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응원하기’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배지가 있든 없든 작가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글 앞에 동전통을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브런치 스토리의 수많은 버스킹 작가들이 많은 ‘응원’을 받아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도 바란다.
나는 ‘응원’을 주고받는 버스킹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