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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Feb 23. 2024

광고의 효과, 돌아온 ‘재미’

값을 이긴 사람

  자비 안 들어간 자비출판으로 첫 단행본을 낸 나는 아닌 척하면서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어쩌면 책이 잘 팔려 2쇄를 찍을지도 모른다는.


  ‘아르코 창작지원금 받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라는 인사를 들었을 때부터 콧대가 슬쩍 올라갔는지도 모르겠다.


  지원금으로 책을 내는 거라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출간까지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동안 동인지를 내면서 호흡을 맞췄던 편집자가 교정작업을 빠르게 끝내주었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이성화가 책을 내면 작품해설을 멋지게 써주고 싶었는데,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라는 스승님의 말씀뿐이었다. 빨리 다음 책을 꼭 내리라고 다짐하며 간단한 추천사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책이 나오고 작업실(현재 운영 중인 작은 카페)로 커다란 박스들이 도착했다. 기획출판이 아니었기에 인쇄한 책을 내게 보내준 것이었다. 출판사의 도움으로 여러 수필잡지와 관계자들에게 책을 보냈다. 일종의 광고였다. 그중에서 분기마다 수필잡지나 단행본 중 좋은 작품들을 선별하여 재수록하는 『선수필』이라는 잡지에서 「엄마는 사십사 살」을 실어주었다.


  그동안 글공부를 함께했던 벗들과 오랜 시간 응원해준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담은 사인과 함께 책을 보냈다.


  책을 보낸 후 생각지 못한 피드백이 돌아와서 꿈에 부푼 가슴은 좀 더 크기를 키워갔다. 잘 받아서 보았다는 카톡과 함께 장문의 메일을 보낸 분이 있었다.     




  마음을 담아서 주신 책 <엄마는 사십사 살>을 읽었습니다.

  저자 사인에 ‘마음을 담아서’라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눈인사를 하고 여러 사람과 앉아 식사를 하곤 했었는데 제가 참 이성화 작가님을 몰랐구나 싶었습니다.

  어쩜 이리도 멋진 글을 쓰셨는지….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어떤 글이 담겼지?

  목차의 작은 제목들이 신선하데.

  그렇게 시작된 글 읽기.

  너무나 잘 읽혔습니다. 술술 잘도 넘어가더군요.

  소재의 다양성에 감탄하고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에 잠깐 숨 고르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리도 글을 편안하게 쓰셨을까? 하다가 이렇게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작가의 지나온 시간, 그 삶을 살아가며 입었던 상처와 따뜻한 시선과 세상을 관조하는 맑은 심성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힘겨운 시간을 잘 견디고 묵묵히 걸어가는 당신에게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며 ‘잘하고 있어,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글 쓰는 소재의 다양성에도 놀랐지요. 노래, 영화, 드라마, 고전, 성경, 책 등등 무엇이든 글쓰기 소재가 된다던 임헌영 선생님의 말씀이 딱 맞았지요.

  시작은 기생충 영화였는데 아버지의 이야기며 인간의 이중성, 불편한 분노의 희석이 편안함을 준 것이라는 말에 잠시 먹먹해졌습니다. 그제야 두려움과 분노를 마주 보게 된 작가님. 그렇게 한 단계 나아가기를 바라는 바람에…. 반드시 그리될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아이들의 이야기도 좋았답니다. 생생하게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며 함께 있는 것 같았어요. 너무나 소중하고 예쁜 아이들. 작가님을 닮았나 봅니다. 어쩜 이리도 마음들이 고운지.

  책을 읽으며 행복하고 슬프고 가슴 아리고 먹먹해지고 여러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쓰고 나면 이제 상처 입은 마음은 조금 편안해 졌을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을 써주셔서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작가님과 가족들의 행복하고 멋진 시간을 응원합니다.     



  생각지 못한 응원에 들떠 가족들에게 자랑했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다녔던 태권도 선생님의 연락도 있었다. 지금은 다니지 않기에 뜬금없이 찾아가 책을 내밀기가 민망해서 알리지 않았는데, 놀랍고 기뻤다.     



카톡보다가 어머님 책 보고 너무 반가워서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책 구입해서 도착한 날 다 읽었어요ㅎㅎㅎ

중간에 놓아지지가 않더라구요

읽으면서 혼자 웃다가 울다가 했네요

그냥..힐링되는 감사함이었어요     



  글이 재밌으려면 웃기거나 울리거나 둘 중 하나면 된다고, 웃다가 울게 하면 더 좋다는 스승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 글이 독자를 웃기고 울렸다니, 콧대에 이어 어깨까지 으쓱거리기 시작했다.


  책을 받아서 두고 나갔다가 왔더니, 남편이 먼저 읽고 독자가 됐다면서 연락해준 선배도 있었다. 책 재밌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타고났더만’이라고 했다는 소리에 겸손한 답장을 보내면서도 입꼬리는 마냥 치솟았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잘 읽었다며 칭찬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글벗들과 지인들의 피드백, 그 이상 진전이 없었다. 출판사에서 인터넷 서점에 소량 배포한 책이 다 팔렸다며 내게 남은 책을 한 박스 보내라는 소식이 들렸지만, 지인들이 사서 주변에 선물한 분량 딱 그 정도였다. 2쇄를 찍을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며 내 책에 리뷰가 달렸을까 들여다봤지만, 글벗들이 올려준 것들뿐이었다. 하기야 책을 많이 사는 편인 나도 책을 사고 리뷰를 잘 달지는 않는다. 초보 중의 초보인 나 같은 무명작가의 책을 굳이 사서 보고 리뷰까지 쓸 독자가 있겠냔 말이다. 그 정도로 대단한 글이었다면, 이미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와 유명작가 대열에 들었을 것이다. 이 나이가 되기 전에, 처음 드라마를 배웠던 그때, 김은숙, 노희경의 뒤를 잇는다는 찬사를 들었겠지. 그러니까 그 정도 송곳은 아니었던 거다, 나는.     


  부풀었던 가슴에서 바람이 빠지고, 어깨 뽕은 숨이 죽어 처진 뒤, 남은 책을 카페 구석에 정리하며 고민했다. 이제 글을 그만 써볼까, 하고. 그러고는 한동안 정말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낮에는 카페에서 단골손님들이랑 노닥거리기도 바쁘고, 퇴근해서는 주부로 할 일도 넘치는데, 굳이 꾸역꾸역 누가 반기지도 않는 글을 뭐하러, 나를 다독였다. 글 쓰지 않고도 남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아이들과 장난치며 더 크게 웃어봐도 웃음 끝이 달지 않았다.      

  이렇게 넋 놓고 있지 말고, 광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출판사만큼은 아니어도 조금만 광고를 하면 그게 마중물이 되어 판매가 늘어날 거다. 내친김에 인터넷 교보문고 모바일 팝업 광고를 제작했다. 어차피 출판사에서 프리랜서로 편집 디자인을 맡아 내 책을 내가 디자인했었기에 광고 디자인도 내 몫이었다. 교보문고의 안내 문구대로 디자인하고 광고비도 보냈다. 적지 않은 돈이었고, 고작 1주일의 광고 기간이었지만 큰 기대를 품고 1주일간 팝업이 잘 뜨는지 확인하며 지냈다. 결과는 광고비의 10분의 1의 수익으로 돌아왔다. 집 나간 ‘재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로 끊어졌던 문학기행이 재개되며 선배랍시고 수필반 동인 모임에 참석했다. 문학기행 날 밤, 숙소에 모여서 독자가 많이 있는 곳으로 가서 써 보자, 웹소설은 어떠냐, 팽개쳐두었던 브런치를 다시 해볼까, 돈이 돼야 재미있지, 밤새워 글쓰기와 돈벌이에 대해 수다 꽃을 피웠다. 그래 볼까? 다시 써볼까.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며 사라졌던 ‘재미’가 돌아오려 들썩거렸다.      

  카페 운영과 한참 학교 다니는 아이들 셋의 육아가 남은 지금, 매일 5천 자씩 써야 하는 웹소설은 선뜻 자신이 서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세 개쯤 브런치에서 연재 글을 써보기로 했다. 때론 써놓았던 글로 땜빵도 가능할 것 같으니 일단 저질러보았다.     


  매주 꾸준히 쓰기는 생각보다 바쁘고 기대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브런치 글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구독자도 늘고 연재 7주 만에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배지도 받았다. 동인지에서 소액이지만 글값을 받았다는 글(월세 받기)에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작가님은 한 줄 시로 나를 ‘값진 사람’이라 표현해주었다.      



  비록 대형 서점에 낸 광고는 큰 효과가 없었지만, 돌아온 ‘재미’가 다시 나가지 않게 잘 붙들고 연재 글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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