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빠진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건가
작가의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꿈꾸기 마련이다. 책 읽는 인구가 줄고 출판업계가 어렵다는 얘기는 말하면 입만 아프고, 그러다 보니 출판사에 기고해서 책 나오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모여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시작한 우리 모임을 비롯하여 늦은 나이에 등단한 사람들은 더욱이 출판의 길이 멀다. 그러니 내 가족에게 남기는 유산이라 생각하고 팔리지 않는 책이라도 자비로 한 권 내보고자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등단 전에는 자비출판으로 내는 책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가 된 모 소설가도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주지 않아 결국 자비로 책을 냈었다는 얘기를 듣고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되었다. 건너건너 듣게 된 카더라 소식이라 사실 확인은 안 되었지만,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만큼 자비출판이 많고 기획출판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수필가로 등단 후 5년을 넘어갈 즈음,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 한 권 묶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글도 늙는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야기한 글은 더욱 그렇다. 자비출판이라도 할 생각을 하니 비용이 만만찮았다. 그간 쓴 글을 묶어서 출판사에 발품 팔이 하려니 막막하기만 하고, 그나마 문학지원금을 신청하는 것이 더 쉬운 통로로 보였다. 선정되기 쉽지 않겠지만, 출판사로 보내는 것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고 문학지원금은 정해진 틀에 따라 신청하는 것이니 그 과정이 더 쉬울 거로 생각했다.
사실 문학상 공모에 글을 몇 번 냈다가 계속해서 미끄러졌던 터라 큰 기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해 아르코 문학 공모 형식이 이전 수필 10편으로 심사하던 것을 책 한 권에 들어갈 작품 전체를 모두 심사하는 것으로 바뀌어서 어려워진 만큼 지원자가 적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는 있었다.
그렇게 지원한 뒤, 떨어져서 연락이 없나 보다 포기하고 있을 즈음 소식이 왔다. ‘6년 동안 모은 글이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빛을 보겠구나.’라고 생각했던가? 아니, 그냥 좋았다. 눈물 날만큼 좋았다. 심사평을 보면서 내가 이런 부분에서 인정을 받았구나 싶어 더 좋았다.
지원금으로 출판사에 계약금을 지급하고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내 글쓰기의 친정과도 같은 ‘한국산문’에서 월간지 외 단행본 작업을 위한 출판을 시작했던 때였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인디자인을 배워 출판부의 편집일을 함께했다. 내 책은 그렇게 버벅대던 초보 시절 내 손으로 디자인해서 만든 것이다. 표지는 중2였던 작은딸이 그려주었다. 자비출판이면서 자비는 들어가지 않았으나 나와 내 주변인의 품이 많이 들어갔다. 기획출판이었다면 누릴 수 없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아르코 선정작품이니 대형출판사에 보내서 출판의뢰를 해보라는 조언도 받았으나 친정을 두고 낯선 타국에서 애 낳는 일처럼 내키지 않았다.
11월 1일,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이 통장에 입금되었다. 원래 그해 안에 책을 내야 했으나 지원금 발표가 늦어져 다음 해 2월까지 유예기간을 주었고, 나는 다음 해인 23년 2월 말에 간신히 첫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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