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와 교정의 차이
내 글이 처음 인쇄된 활자로 나온 것은 17년 1월 등단작 「무단횡단」이 월간 『한국산문』에 실렸을 때였다. 그 뒤를 이어 『수수밭 길을 걸으며』라는 제목의 동인지에 두 편의 글이 실렸다.
늦게라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들어간 서울디지털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는 시, 소설, 수필, 동화,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동아리가 있었다. 임헌영 교수님의 ‘수필 쉽게 쓰기’ 강의를 듣고 수필에 푹 빠진 나는 수필 동아리에 들어갔다.
수필 동아리 ‘수수밭’-빼어난 수필을 쓸 수 있도록 우리의 글밭을 이루자’라는 의미, 수수秀隨밭이다-에서는 내가 등단한 해부터 동아리 출신 등단자들끼리 동인지를 만들었다. 햇병아리였지만, 시기를 딱 맞춰 등단한 덕에 동인지에 막내 포지션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그 후 매년 동인지를 냈고, 다가오는 봄에 8호가 나올 예정이다.
첫 동인지는 사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뭐가 뭔지 잘 모르고 어영부영 따라다니다 보니 책이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판사를 알아보고 견적을 받아 예산을 책정하고 동인들이 비용을 나눠 부담할 수 있도록 공지하고…. 자비 출판인 데다 책을 처음 내는 회원들이 다수여서 글솜씨는 빼어날지 모르나 출판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의욕도 열정도 넘쳐 의견이 분분했지만, 누구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기에 서로 이견을 조율하고 모아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산으로 가려는 배를 바다로 끌어내리려는 사공의 노력이 필요했고, 나머지 동인들은 사공인 척 나서지 않고 노를 젓는 데 힘을 보태야 했다.
책의 제목과 표지를 정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글을 다듬는 일이었다. 각자의 글을 퇴고하고 조를 짜서 합평하고 교정을 봐주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퇴고와 교정의 차이도 잘 몰랐고, 교정이라고 해봐야 그저 띄어쓰기나 맞춤법, 오탈자나 간신히 찾아내는 정도였다.
동인지 2호인 『열일곱, 그들의 봄』부터는 출판사의 전문 편집자에게 교정작업을 맡겨 진행했다. 편집자가 보내온 원고 교정 체크 사항을 보니 그제야 퇴고와 교정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수필의 초고를 마치면 배운 대로 소재와 주제가 잘 맞는지 점검한다. 그게 맞으면 그때부터 구성은 괜찮은지, 서론이 길지는 않은지, 앞부분에 흥미를 끌었는지, 제목은 적절하고 섹시한지-눈길을 끈다는 의미로- 등등을 고민한다. 그다음 비문은 없는지, 띄어쓰기와 맞춤법, 오탈자를 점검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퇴고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퇴고는 여러 번 반복할수록 글이 좋아진다.
동인지 1호를 하면서 선배들과 이 과정을 반복했다. 우리는 퇴고를 반복한 것이었다.
편집자의 교정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비문과 띄어쓰기 맞춤법, 오탈자 점검은 같았다. 그러나 편집자의 시선은 내용의 진위점검도 포함되었다. 글에 어떠한 정보가 있다면, 예를 들어 어떤 영화나 책의 내용을 인용하면 인용 문구가 정확한지 점검했다. 일종의 팩트체크인 것이다. 어쨌든 전문가는 달랐다.
편집자의 교정사항 그대로 비문을 수정하니 편안하기도 했지만, 내 문장 고유의 느낌이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문장 전체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수정했다. 교정을 전문가에게 맡기니 책의 완성도에 어쩐지 더 믿음이 갔다. 첫 동인지 때는 산으로 덜렁 올라갔던 배를 간신히 끌어 내려 바닷가 근처까지 간 느낌이었다면, 2호 때는 바닷물에 띄우긴 한 것 같달까? 두 번째이니 교정뿐 아니라 다른 부분도 나아졌을 테니.
그 뒤로도 동인지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그 항해에 사공으로 혹은 조력자로 늘 참석했던 덕에 나는 바다를 향한 시야를 틔우고 큰 숨을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