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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Feb 09. 2024

건물주 되셨어요

유통은 업자에게

 - 선배님, 우리 지금 집 한 채 지은 거죠? 뼈대, 인테리어, 청소, 입주, 집들이까지…

 - 네, 축하드려요~ 수필 한 편 완성했으니 건물주 되셨어요^^     


   수필동아리에서 만난 후배의 퇴고를 도와주느라 긴 통화와 카톡 끝에 글 쓰는 일이 집 짓는 일보다 힘든 것 같다는 메시지에 건물주 된 것을 축하한다 답했다.

 맞는 말이다. 짧은 수필 한 편 완성하는 일이 집 한 채 짓는 것처럼 하나하나 공들일 것들이 많으니….


  그럼 동인지 작업은 입주자가 여럿인 다세대 주택을 짓는 것인가?

  코로나가 한참이던 21년에 발행한 『폴라리스를 찾아서』라는 다섯 번째 수수밭길동인지로 내가 회장을 맡아 진행했기에 더 기억에 남는 작업이었다. 2020년도 봄, 네 번째 책 『유칼립투스』가 나왔을 때만 해도 그저 모여서 출간 파티를 못 하는 것이 서운한 정도였다. 팬더믹이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기에 합평 수업까지 온라인으로 전환된 시점에 다시 동인지를 내야 할 시기가 온 것은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한번 건너뛰자는 얘기까지도 나왔다. 지난 네 권의 동인지를 모두 참석했던 나로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내가 동인지회장을 맡게 된 해에 동인지가 중단되는 건 마땅찮았다. 해서 코로나로 생계가 흔들리고 생활이 어려워진 동인들을 추슬러 반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면도 있었다.      


  간신히 15명의 입주민을 모았으나 대면 모임은 어려웠다. 아쉬운 대로 입주민을 카톡방에 몰아넣었다. 모여서 얘기하면 간단히 끝날 일도 카톡으로 소통하자니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글을 모아 제목, 목차 등을 정해나갔다.


  인원이 예년보다 적었다. 품 넓은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에서 내주는 책도 아닌 자비출판이니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럭저럭 각자 다른 생업으로 먹고사는 가난한 글쟁이들을 위해 여러 출판사를 알아보려 인터넷을 뒤졌다. 출판비를 줄여 받는 대신 초판 일부의 수익금을 출판사가 가져가는 구조를 가진 출판사를 찾았다.


  이전 출판사도 비슷한 구조였고, 인터넷 서점에 책을 유통해주었다. 다만 유통 부수가 적고 책이 얼마나 팔릴지 알 수 없었기에 수익금만큼 출판비를 깎아주진 않았다. 5호의 출판사는 자사 홈페이지에 신작을 게재하고 인터넷 신문에 보도자료를 내는 등 다방면으로 홍보 루트가 있어 책이 좀 팔릴 거라고 했다. 출판비도 적으면서 책도 팔린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두꺼운 계약서를 주고받았고 단톡방에 공유하였지만, 욕심 없는 입주민들은 수익이나 계약에 관심이 크지 않았다.


  그렇게 약간의 기대를 안고 출판한 동인 5호는 출판사에서 유통한 초판을 완판하고 2쇄를 찍었다. 라고 마무리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통을 업자에게 맡겼으니 홍보도 잘해주길 바랐으나, 그 홍보가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초판이 어느 정도 소진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2년이 지나자 출판 유통 계약을 종료한다는 메일만 한번 왔다.

  글솜씨가 좋은 동인들이 매년 열정을 가지고 덤비는 일이지만, 책이 판매되는 것은 작가의 역량과는 다른 일이었다.      


  어쨌든 모양새로 봤을 때, 한 채의 다세대 주택이 멋지게 완성되었다. 입주민들만 만족하는, 어느 변두리에 있는지 누구도 알지도 못하는 집이긴 하다. 그저 간혹 놀러 와주는 사람들이 멋지다고 칭찬해 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월세는 못 받지만 나는 건물주다.                



『맑은 날, 슈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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