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호수정원의 Moment

모든 순간의 끝에 남아 있던 한 사람, 나의 할머니

by 쭈이날다


2025년 추석, 처음으로 명절연휴에 여유롭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게 되었다.

명절 때가 되면 엄마는 일을 쉬지 못하셨고,

오빠네 가족이 내려와 함께 보내곤 했다.

그러나 친가 큰집에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기로 하면서

오빠도 추석명절부터는 내려올 일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도 이제는 명절에 일을 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둘이서 보낼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25년 추석 명절은 신이 내린 연휴 기간!!

긴 연휴에 내가 가기 좋은 건 바로 장거리 여행이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예전부터 너무 가보고 싶었던

전남 목포여행을 계획했다.

목포는 양산에서 무려 편도 4시간 거리였기 때문에

여행 가기 전, 다녀온 후 휴식시간까지 고려하면,

10월 추석 긴 연휴에 다녀오기 적합했다.


우린 목포까지 가는 도중, 장거리 운전도 쉬어갈 겸

2시간 거리에 있는 순천에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가족끼리 순천은 몇 번 갔지만 이상하게 그때마다

순천 호수정원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 목포 가기 전 순천 호수정원에서

산책도 하며 힐링하기로 했다.


양산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순천 호수정원에 도착했다.

지난 가족여행 때 오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호수정원은 햇살 좋고 바람 솔솔 부는

쾌청한 가을빛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잔디밭의 초록초록한 풍경과

파랗고 맑은 하늘과 함께

형형색색 아름다운 국화꽃과

포인세티아까지 예쁜 꽃으로 가득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큰 호수와 함께

푸른 풍경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호수 옆으로 쭉 이어져 있는

가로수길을 따라 걸어갔다.

양옆으로 가로수가 줄지어 있고

가운데에는 꽃이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다.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가로수길 왼편으로 호수와 함께

초록초록한 봉화언덕이 보였다.

호수의 청량함과 초록빛의 봉화언덕이

함께한 풍경이 마치 그림과도 같았다.

하늘도 푸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호숫가의 봉화언덕은 정말 예뻤다.

이 풍경을 오래 눈에 담기 위해

호숫가 봉화언덕이 한눈에 들어오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처에 꽃이 많았는데도

벤치의 편안함과 호수 풍경에 반해서

그저 앉아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바람도 불고 경치도 좋고

이게 진짜 힐링이었다.


평화로운 호수 풍경과 함께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 순간을 함께해 줄 예성의 음악을 꺼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예성의 앨범 중

정규 1집 Sensory Flows를 듣던 중

8번 트랙 Moment 재생되었다.


'Moment, we were here

여전히 생각해 그날의 우리를

That moment is far away

어쩌면 너무도 멀리 와버렸겠지만


But you don't know

how I felt before

접어둔 한 조각 마음을


서툴게 빛나던 우리의 순간 속에서

시간을 가로질러 네게 달려갈게

피고 지는 계절들에

오롯이 너 하나만 담아 두고파

Every moment'



순천 호수정원의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예성의 'Moment'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그리운 할머니였다.

할머니와 함께 아름다운 꽃을 보고

호수를 함께 바라보며 가을바람을 맞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명절마다 외할머니댁에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명절은 엄마와 단둘이 보내게 되었다.

그 이후 오빠의 결혼으로 오빠네 가족과 함께 보냈지만

이제는 또다시 엄마와 둘이 보내게 되었다.

비로소 둘이서 함께 여행도 할 수 있게 되면서

여유롭게 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순천 호수정원에서 따스한 가을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까지

더없이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저 이렇게 엄마와 둘이

즐기는 평화로운 행복이 계속되길 바랐다.


하지만 둘 다 서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리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나의 외할머니다.

엄마도 나도 오랜 시간 할머니를 만나 뵙지 못했던

마음의 부채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오랜 시간 멀리 와버렸을까.


외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를 키워주셨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 회사에 출근한 후

집안일을 하면서 나를 돌봐주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다정하신 분이 아니었다.

TV에 나올 법한 꼬장꼬장한 할머니 캐릭터,

그 캐릭터가 딱 우리 할머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보다 엄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매일 모임과 친구들의 만남으로 바빴던 할머니 대신

나와 놀아주고 다정하게 해 주신 건 할아버지였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9살 때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사춘기가 왔을 때 힘들어할

나를 위해 엄마는 내가 중학생이 되자 독립하셨다.


그래도 할머니와 살던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할머니는 자주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나도 할머니가 보고 싶고 혼자 있기 심심할 때면

습관처럼 할머니 집에 찾아가서 같이 있었다.


사실 나에게 언제나 그립고 애틋한 존재는

9살 때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였다.

나에게 다정하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할아버지가 눈물 나게 그리웠다.

할머니는 비록 엄하셨지만

나와 늘 함께 있어서였을까,

언제나 내 곁에 계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멀어질 순간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대학교 3학년 휴학 후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오자

그 사이에 집에 많은 일이 있었다.

엄마는 그 이후 할머니댁에 찾아가지 않았고

멀리 이사까지 하게 되면서

할머니를 더 이상 뵙지 못했다.


언젠가 만나 뵐 연이 닿겠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의 깊은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겠지 했는데

이상하게 순천 호수정원에서

예성의 'Moment'을 듣는 순간

할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었다.

가사처럼 시간을 가로질러 달려갈 수만 있다면,

나는 우리 함께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의 할머니에게 가고 싶었다.



순천여행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할머니를 뵙고 싶어 간절히 바랐던

나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추석이 지나고 기적처럼 거짓말처럼

할머니를 만나 뵐 기회가 생겼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다시 연결되었다.

그 이후 정확히 18년 만의 만남이다.


긴 세월 동안,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고,

이제는 집이 아닌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셨다.

면회실에서 만나 뵌 할머니는 93살의 연세로

예전보다 훨씬 더 작아져 있었다.

꼿꼿했던 할머니의 등은 예전보다 더 굽어 있었고

그만큼 체구는 한 뼘 더 작아 보였다.

그렇게 정정하고 건강하셨던 할머니는

백발의 하얀 머리와 함께 보조기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걸어 나오셨다.


할머니는 치매가 진행되며 최근 기억은 거의 다 잃었고

아들 딸 제외, 손자 손녀는 아무도 못 알아본다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를 마주하자마자

'아이고 내 새끼 OO야, 우리 OO가'라고

내 이름을 부르시더니, 이내 아이같이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셨다.


할머니의 기억력이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면

나 역시 할머니 기억 속에서는

어릴 적 모습으로 남아있을 텐데,

한눈에 나를 알아보시고 우셨다.

예전에 그토록 강인하고 엄했던 할머니는

나를 보기만 해도 반가워서 아이처럼 울고 계셨다.


할머니의 삶에 가장 그립고 소중한 존재는

평생을 함께한 남편인 할아버지도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인 아들도 딸도

그 많은 손자, 손녀들도 아닌

어릴 때부터 키운 나 하나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다 잊어버려도

나에 대한 기억은 소중히 간직하고 계셨다.

그렇게 다정한 말 없이 엄한 할머니셨는데도

할머니의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보물이 나였다.

이걸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계속 되뇌듯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 가시나야, 어디 갔다 이제 왔노'


그 순간 울컥했지만 슬퍼할 엄마와 이모를 위해

눈물을 꾹 참고 최대한 침착하고 차분하게

할머니 손을 잡아드리며 울고 계신 할머니를 달랬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 홀로 남겨진 밤이 찾아오자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할머니는 항상 나와 함께였기 때문에

곁에 있는 소중함을 미처 몰랐다.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가며

편찮으신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의 일상에서 곁에 있어주셨던 건 할머니였고,

할머니와 함께했던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음을.

그렇게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가 아플 때마다

회사에 출근해야 했던 엄마 대신 나를 돌봐주셨다.

하루는 하교 후 집열쇠가 없어서 혼자 담을 넘었는데

오른쪽발목을 크게 다쳐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저 주저앉아 할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할머니는 돌아오자마자 나를 발견하고 계속 우셨다.

이후 학교 다닐 때 발목이 아파 걷지 못했던

나를 할머니가 업고 다니셨다.


초등학교 때 사시 눈수술로 입원했을 때도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함께해 주셨다.

눈 수술 다음 날 하루만 눈보호대를 차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앞을 못 보는 상황에서

일상생활과 화장실까지 모두 할머니가 케어해 주셨다.

내가 카스테라를 좋아해서 옆 침대 보호자에게

잠시 나를 맡기고 병원 1층에 있는

슈퍼로 카스테라를 사러 바삐 다녀오시곤 하셨다.


그렇게 나를 보살펴주셨던 할머니는

지금 혼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기가 되셨다.

그래서 매일 안심팬티를 착용하고 계신다.

엄마와 나는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씻어내고자

늦었지만 할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홍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3월의 봄에,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셨던 통도사로 향했다.


즐겁게 이동하는 길 할머니가 차 안에서 그만 실례를 하셨다.

급하게 수습하기 위해 양산 휴게소에 들렀다.

할머니 케어를 위해 이모가 화장실로 들어가실 때

나는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어릴 때 내가 입원했을 때 할머니가 다해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해드릴 차례였는데도

나는 차마 못했다. 아니 볼 수도 없었다.

아마 아이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기억 속에 할머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너무 늦게 슬픈 현실을 깨달았다.

언제까지나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할머니는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된 지금도 아픈 할머니 곁에서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무겁고 슬픈 마음으로 다가왔다.



'저 맑은 햇살 틈에

혹시나 네가 서 있을까 봐

눈을 못 떼


우연한 인연을 빌어

네게 전할 수 있을까

접어둔 한 조각 마음을


문득 그런 날이야 또 거짓말처럼

내 앞에 네가 있는 것만 같은데

낯선 꿈을 꾼 것 같아


Don't you know?

I'm still the same

그 어디쯤에 머무는지

턱 끝까지 숨이 차게

달려가 네게 안길게

행여 우리 어긋난 대도


머물던 잔향 뒤로 되살아나

Every moment' 


눈부시게 밝은 햇살 속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가기 전

건강하셨던 그 시간을 향해,

가사처럼 우연한 인연을 빌어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지금은 할머니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진심을 소리 내어 말할 수조차 없다.

할머니는 더 이상 나의 진심이 담긴 말을

기억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표 볶음밥과

여름마다 시원하게 타주신 아이스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해달라고 하고 싶어도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는 이제 더는 해주실 수가 없다.


대학교 방학 때 할머니집에 갈 때면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가 해준 볶음밥이 먹고 싶어서

해달라고 졸라서 해주신 적 있었다.

물론 그럴 때도 할머니는 다정한 말이 아닌

이제 네가 다 컸으니 네가 해서 바쳐야 하는데

아직 해달라고 하냐고 뭐라 하시긴 했다.

그땐 그 말이 상처였는데 이젠 그 얘기도 듣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할머니음식이 최고라고

안기며 어리광도 부리지 못한다.

할머니가 타준 커피가 맛있다고 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타주실수도 없고,

방학 때마다 집에 와계시는 게 너무 좋아서

또 와달라고 할 때 행복하게 웃으며

와주셨던 그때처럼 오실 수도 없다.

그 행복했던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그 순간이 너무 그립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 할머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안기고

할머니가 해준 볶음밥이 먹고 싶다며

해달라고 졸라도 보고

둘이서 사이좋게 티브이도 보며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시간을 가로질러

할머니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리웠던 할머니와 둘만의 시간으로.


이제는 할머니와 함께했던 찰나의 추억들이

내 곁에 지워지지 않는 잔향으로 머물러 있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순간들은

이제 내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잊어버려도 나 하나만큼은

꼭 기억하고 반가워해 주셨던 우리 할머니처럼.


예성의 'Moment'를 들을 때면

언제나 할머니가 떠오른다.

저 하늘의 따스한 햇살 속 환하게 웃고 계시던

할머니의 눈부신 시절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와 이별하는 연습을

조금씩 시작해보려 한다.

부디 할머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남은 생은 그저 건강하고

편안하게 머무르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