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계절과 당신

2025.01.18

by 재희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밤. 기다리던 함박눈이 펑펑 소리 없이 내린다. 둘째 날에는 후라노 비에이에서, 셋째 날에는 오타루에서 만났는데 마침내 삿포로에도 기다렸던 첫눈이 내린다.


새벽 내내 가만히 창밖을 바라만 봤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서는 가는 시간을 애를 쓰며 붙잡고 싶어 참을 수 없는 울음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생각보다 오래 시간을 들여 씻고 나온 애인이 문득 서툰 글씨의 편지를 건넨다. 추운 곳으로 여행을 오며 나를 걱정한 그가 하얀 장갑을 선물해 주었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엽서에 냅다 편지를 써달라고 요구한 탓이다. 그 이야기를 잘 기억했다가, 다음날 화장실에서 불편한 자세로 또박또박 마음을 적어온 당신.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이 문장을 가까운 시일에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랑하는 계절에 사랑하는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왔다.


그는 포근한 삿포로의 첫눈보다도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봐준다. 나는 그 눈망울에서 마음을 본다. 사랑을 본다. 빤히 바라보다 수줍게 깊은 보조개를 보이며 발그레 볼이 붉어진다. 그러니까,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언젠가,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연인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번 겨울에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결혼 생각이 크게 없었던 터라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신기해하고 순수하게 설레하는 게 투명히 재미있다. 꼭 사랑을 처음 해보는 어린아이들처럼 예쁘게 웃고 마음껏 사랑한다. 그런 우리가 덧없이 예쁜 것 같다.


오늘 새벽, 이제 이곳은 당신이 아니면 올 수 없을 것 같다고 너무 외로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도 여행을 하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단다. 그러더니 평생 함께 오자는 약속을 건넸다. 나도 그도 미래에 대한 약속을 쉽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흩날리는 눈 속에서 선명한 약속을 했다. 그 순간이, 마음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워서 오래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편한 자리를 내게 양보하고 구태여 불편한 자리를 택했다. 주는 사랑이 익숙한 나는 미안하고 마음 한 편이 아프지만 이제는 받는 사랑만 하라는 당신. 그럼에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에 적어보는 나의 짙은 사랑글. 사랑한다고. 감히 평생을 약속할 만큼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도 지지 않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나도 당신과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아서 생경한 요즘. 오래, 많은 것들을 함께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있지, 내 사랑은 잘 지지 않으니 당신의 사랑도 잘 지지 않았으면 해. 내 사랑은 잘 식지 않으니 당신의 사랑도 잘 식지 않았으면 해. 내 사랑은 잘 끝나지 않으니 당신의 사랑도 잘 끝나지 않았으면 해. 요즘은 그런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해. 끝을 모르고 싶은 마음으로. 많이, 많이 사랑해. 감히 영원과 평생을 약속하고 싶은 마음으로.



/ 사랑하는 계절과 당신, 2025.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