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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사공사칠 Jun 20. 2024

안 하기 연습

당신은 자신을 연마하십니까?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쇼팽 에튀드 발매 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매일매일 연습하며 진실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습작을 뜻하는 에튀드는 그가 진실되게 살도록 도와주는 교과서다. 그는 “음표 뒤에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해 곡의 첫 두 마디를 7시간 연습하기도 하고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잘 표현하고자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읽기도 한다. 


    이 작은 거장은 왜 매일매일 연습할까? 그가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는 유명 피아니스트라는 거인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는 연습을 통해 누릴 소소한 기쁨을 즐기는 범인의 뉘앙스를 풍긴다. 최고를 꿈꾸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피아니스트인 것이다. 


    인터뷰를 읽고 난 후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 본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연습하는가? 요즈음 내가 마음을 다잡고 연습하는 것은 ‘안 하기 리스트’다. 23년도 9월부터 안 하기 리스트 쓰기를 연습했지만 매일 열심을 내 꾸준히 노력한 것은 아마도 반년이 좀 안 된 것 같다. 매일 수련이라는 항목을 메모장에 만들어 운동, 일기, 명상 등 인생에 새기고픈 다섯 가지 습관과 더불어 매일 점검한다. 


    왜 ‘투 두 리스트’가 아니고 ‘낫 투 두 리스트’인가? 은사님께 이 습관의 힘에 대해 들었으나 실천으로 옮기진 않았었다. 그러던 중 문득 ‘집중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집중=안 하기’라는 공식이 떠올랐다. 집중은 한 가지를 남겨두고 다른 것을 안 하는 상태다. 좋은 집중(?)에 관한 여러 방법론이 있지만 가장 좋은 집중법은 다른 아이디어를 소멸시키고 그것만 남겨두는 것이라는 통찰이 들었다. 잔잔한 강에 떨어진 돌 하나가 만든 파동이 동해 바다의 파도보다 우렁찬 법이다. 딱 일주일만 안 하기 리스트를 최선을 다해 작성해 보자는 생각으로 연습에 돌입했다. 


    처음 안 하기 리스트를 작성할 때는 큰, 추상적인, 일상적이지 않은 바에 대해 적었다. ‘기획안 대충 쓰기’, ‘음악 막 듣기’ 등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말과 행동을 점검하는 것으로 모양새가 변했다. ‘발 질질 끌기’, ‘친구와 대화할 때 말 끊기’, ‘답답하다 느끼는 말 끝까지 듣기‘ 등. 리스트 속 내용이 구체적으로 변할수록 더 큰 도전이자 확실한 수련으로써 내게 다가왔다. 


    안 하기 리스트 작성을 통해 집중의 토대를 마련하는 연습을 한 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무언가를 깨달았다.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안 하기 리스트 지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매일 5분에서 10분 정도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부터 일이다. 이를 지키는 것은 더 큰 산이다. 이 즈음되면 몸에 익을 만도 한데 여전히 점검해야 할 습관은 많고 그것을 안 하기는 어렵다. 100프로 성공한 날이 며칠인지 손에 꼽을 정도다. 


    자신을 연마하는 것은 어렵다.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불편하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간 아니겠는가? 연습하는 인간은 누운 몸을 일으키고 억지로 달리는 인간이다. 그는 왜 눕지 않고 달리나? 그를 달리도록 만드는 동력은 달리기 그 자체다. 달리지 않으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기에 그는 몸을 일으킨다. 평범한 사람이기에 매일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진실될 수 없는 것이다. 계속 돌덩이를 굴리는 시지프스 인간이다. 


    매일의 연습은 무언가의 과정을 넘어서 그 자체로 결과다. 어딘가로 가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다. 그래서 연습은 끝이 있을 수 없다. 가장 높은 산에 오른 후 등산을 멈추는 사람은 스스로 산악인이 되길 멈춘 사람이다. 그는 산을 이용해 이름값을 채웠으므로 더 이상 산에 오를 이유가 없다. 반면 매일 산에 오르는 사람은 실력의 여하에 상관없이 산악인이다. 그는 끝없이 산을 알아가고, 산을 알았다고 느낄 때 즈음 모르는 산을 발견하는 일상의 재미를 얻을 것이다. 산과 그의 교감은 지구의 시간이 흐르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그는 매일매일 산에 올라 하루만치 더 진실된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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