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aus Schulze - ‘1. Satz: Ebene’
Klaus Schulze - ‘1. Satz: Ebene’
마태복음 속 예수는 세례를 받아 새 사람이 된 후 사막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사탄이라는 몬스터를 만나 시험을 겪는다. 몬스터는 경계를 지시 (de‘monst’rate) 하는 존재다. 사막에 도착한 예수에게 몬스터는 이곳을 넘어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당신은 이 선을 넘을 수 없으니 포기하라. 40일 동안 사막에서 수련하며 예수는 어떻게 사탄이 그은 경계를 넘는가?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내 앞에 닥친 시험을 통과하고 싶었다.
영어로 ‘관 뚜껑’이라 번역하는 이름의 작은 바가 문래동에 있다. 마치 관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문을 돌리면 빨간 조명이 나를 반긴다. 심야에도 커피를 파는 이곳에서 오늘은 오랜만에 위스키도 마신다. 여느 때처럼 사장님이 엄선한 음악을 듣던 중 그가 내게 조심스러운 제안을 한다. 제가 최근에 빠진 음악이 하나 있는데… 무서운데 동시에 희열이 느껴지는… 20분 남짓의… 말없이 함께 들어볼까요? 너무 좋다고 답한 후 사장님이 말없이 음악 소리를 줄인다. 빨간 조명이 진해지고 공기가 무겁게 변한다. 눈을 감고 공기 속으로 숨는다.
날카로운 파형의, 마치 레이저가 빛이 아닌 소리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사운드가 있다. 그 주변을 잘게 잘린 오케스트라 음악이 맴돈다. 음악 조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기괴하고 뒤틀린 기억들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소리가 이내 잠잠해진다. 날카로운 조각들이 서서히 선으로 변한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는 선이 끝을 모르고 주욱 이어진다. 제발 이 소리를 멈춰줘.
선이 되어 뻗어 나간 음이 어느새 전자 오르간 소리로 모습을 바꾼다. 이걸 오르간이라고 불러야 하나 싶다. 이건 오르간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 빛에 가깝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사막이 떠오른다. 강한 빛으로 인해 눈을 뜰 수 없다.
태양이 한 사람을 내리쬔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 누군가 산 적이 있을까 싶은 광야. 정오에 접어들자 태양 빛이 점점 더 강해진다. 그는 등에 아무 짐도 지지 않았지만 태양을 어깨에 짊어진 것 마냥 힘겹게 버틴다.
그의 마음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린다. 넌 이 선을 넘을 수 없어. 집을 잃은 코드 진행 속을 헤짚으며 그가 정체 모를 목소리에 괴로워한다. 아, 목이 마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난 이곳에서 무엇을 견디는 걸까?
목이 말라죽기 직전, 그의 머리 위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다. 그는 참으로 나와 닮았다. 그는 나의 분신이다. 나를 괴롭히던 목소리는 나구나. 갑자기, 온 세계가 뒤틀린다. 좌우 패닝이 심해지고 불협 음이 쏟아진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뒤틀린 내 마음과 광야가 함께 녹아내린다. 언제 끝날지 모를 무너짐이 모습을 감추고 찾아온 침묵.
침묵 속에서 그는 깨닫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 선을 넘었다. 매우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세상은 새로운 나를 준비하기 위해 무너져 내려야 했을 뿐.
20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음악이 끝났다. 그 후로 사장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광야에서 뒤틀린 자신을 만난 그는 그다음 어떻게 살았을까? 성서 속 예수는 광야에서 돌아온 후 친구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사서 고생 길이 시작되었다. 자기 밖에서 보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내 안의 광야를 돌아보자고 자기가 느낀 바를 말했을 뿐이다. 그 끝은 왕좌가 아니라 십자가 처형이었다. 광야에서 살아 나오니 삶이 더욱 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광야 끝에서 무너진 세계를 겪지 않는다면 그의 하루가 새로워질 수 없음은 분명하다. 강한 태양 빛에 의해 세계가 녹아내려야 새로운 음악을 쓸 수 있다. 음악 끝에 찾아오는 침묵도 온 세상이 무너져야 의미 있다.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