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넷이 될 것인가 자비스가 될 것인가
현재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이 바뀐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나는 20대 중반에 휘발성 SNS와 숏폼 등 오늘날 큰 영향을 미치는 SNS에 대해 미리 엿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릴스, 유튜브 쇼츠 등의 선배들을 대하는 미디어 학자들의 연구를 봤다. 하루 지나 사라지고,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후루룩 메시지를 전하는 세상. 대부분의 연구자는 다가올 변화에 우려를 표했으나 나는 그들의 말을 심장으로 느끼지 못했다. 우려보다는 기대를 품고 누구보다 열심히 새로운 기능들을 사용했다. 매일 작업실에서 두드리던 샘플러와 신스 영상을 스토리에 올리며 친구들에게 가볍게, 자랑하던 때를 기억한다. 개성 있는 사운드를 얻으려고 노력해도 모자란 시간에 가볍게 훑듯이 만든 사운드를 스토리에 전시했다. 그것이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일종의 성취감도 느꼈다.
시간이 7~8년 정도 흐른 지금, 연구 속 우려들은 현실을 넘어 더 큰 사회 문제가 되어 세상을 흔들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알고리즘은 한 사람이 자기가 믿는 세상에 갇혀 세계관 밖을 넘어갈 수 없도록 문지기 역할을 한다. 한 국가의 리더쉽이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간신에 둘러싸여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정치적 자살을 선택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칸의 나열은 해수욕장에 가득 찬 쓰레기처럼 자유로운 서핑을 방해한다. FOMO (Fear Of Missing Out) 라고 쓰는 현상이 10대부터 노년층에게 사회적 박탈감을 준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나오는 멋진 세계와 멋진 무리 속에 나만 끼지 못하는 듯한 착각을 주는 것이다. 이러다가 언젠가 SNS가 영화 터미네이터 속 스카이넷이 되어 세상을 파국으로 이끌지 않을까! 모두가 거북목이 된 채 알고리즘 공격을 피해 다녀야 하는 세상.
물론 나 또한 이 글을 SNS에 올리는 모순은 그만큼 SNS가 재미있는 놀이터이자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즐거운 일상이 담긴 창고임을 말한다. 우려와 기대를 함께 느끼며 올 한 해 실천하고 싶은 몇 가지 인스타그램 습관을 적는다. 2025년,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스카이넷이 될까? 아니면 비행을 돕는 자비스가 될까?
1. 과감하게 팔로잉하기
최근, 인스타그램을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10년 정도의 기록이 담긴 계정을 해킹당했다. 이 계정에는 지난 시절의 음악 활동이 담겨 있어 더욱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계정을 팠다. 잃어버린 초기 자본(?)을 되찾기 위해 기존 계정으로 들어가 팔로워 팔로잉 목록 속 아이디들을 팔로우하던 찰나.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우 속에는 감정, 정치, 인간관계 등등 수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 서로 맞팔을 하며 다지는 동맹 관계.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나는 팔로우를 걸었는데 상대가 응하지 않을 때 느끼는 서운함. 콘텐츠를 올렸을 때 오르는 팔로워 숫자에서 느끼는 기쁨. 관계가 어그러질까 봐 보고 싶지 않아도 끊지 못하는 팔로우 등. 인스타그램 팔로우는 디지털 세상 속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담고 있다.
올해는 팔로워와 팔로잉의 수치와 그 속에 담긴 관계에 신경 쓰지 않고 관심 가는 것은 과감히 팔로잉하리라 다짐한다.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할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싶다. 취향의 끝을 매섭고 날카롭게 갈고 닦는 도구로 삼고 싶다. 몇 안 되는 팔로워가 아닌 좋아하는 것들을 담은 팔로잉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더 이상 좋지 않은 것은 단호하게 이별할 다짐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나다.
2.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좋아요와 공유 횟수를 숨긴다 (때로는 댓글창도)
SNS의 좋아요, 공유 횟수, 댓글 수는 콘텐츠의 재미와 퀄리티를 보장하는 수치처럼 인식되어 왔다. 리뷰가 많은 음식점을 무턱대고 신뢰하는 느낌이랄까? 수치에 기대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니 정작 내게 의미 있는 게시물을 찾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이 보낸 반응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콘텐츠를 어떻게 느끼느냐다.
콘텐츠와 나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맺기 위해 올해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둘러싼 수치를 숨기고 싶다. 수치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장 진솔한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수치가 아닌 그것에 담긴 내용과 진정성을 보고 싶다. 수치는 품질을 알려줄 수 없다.
3. 정말 중요한 순간은 스토리에 올리지 않는다.
24시간 후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일상을 기록하고, 이벤트를 자랑하고, 떠오르는 여러 감정을 공유하는 등. 정말 중요한 순간을 포착할 때도 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이나 친구들과 즐겁게 하는 파티, 인상 깊은 책의 글귀, 아주 많이 들은 노래 등.
그러나 정말 중요한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돌아올 수 없다. 맨눈과 귀로 담아도 다 담을 수 없는데, 그사이에 카메라 렌즈까지 끼면 순간을 오롯이 경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순간은 카메라에 담아 스토리에 공유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차라리 기억을 되새기며 글을 적는 게 중요한 순간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2025년에는 스스로와 약속한 세 습관을 지켜 즐거운 디지털 생활을 하고 싶다. 그리고 네 번째,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SNS에 접속하지 않고 싶다. 종종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 현실을 온몸으로 듣고 느끼며 더욱 해상도가 높은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