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이야기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있을까? 산이 깎여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저것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의 안에서 화학 작용이 일어나 저것이 되려면 엄청난 혼돈이 따른다. 그 후에 잠시 고요가 찾아오고 그 속에 함께 온 깨달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깨닫기만 한다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정성을 들여 발효하는 시간을 들여야 아주 조금씩, 물이 포도주로 변해 간다. 시간을 들인 만큼 포도주로 변하면 좋으련만 때때로 오크통을 들여다보니 물이 엉뚱하게 변해 있다. 포도주가 아니라 사이다가 있다. 사이다라도 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이번에는 오크통에 구멍이 나 바닥이 말라 있다. '그만둘까?' 그만두면 물이 물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물이 물이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리 없었던 하루를 떠올린다. 시계가 멈춘 듯 권태로웠지만 혼란도 없었다. 물은 물이므로 기대도 없었고,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었다. 미래도 없었지만 미래에 마주할 고통도 없었다. 물을 포도주로 바꿀 생각 따위 안 하니 괴롭지 않았다. 역시 물은 포도주가 아니라 물이다!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림이 있다. 자꾸 기억이 발목을 잡는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기 위해 손발을 움직인 시간이 떠오른다.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빈 시간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이것이 물인지 불인지는 중요성을 잃었다. 언젠가 맛볼 포도주의 맛도 중요하지 않다. 변화만이 진리다. 물과 포도주 모두 목적의 자리를 잃고 수단이 되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오크통을 들여다본 시간 자체가 목적이었다. 나는 물도 포도주도 가지고 논 것이다. 천국도, 열반도, 대 AI 시대와 우주도 전부 가지고 놀았을 뿐이다. 나의 종교는 물이 포도주가 되길 기다리며 철철 흘린 시간이었다.
삶을 변화시켜야 종교라면 나의 종교는 시간이다. 거친 시간이다. 석굴암이 아니라 그곳에 오르고자 걸은 토함산의 거친 길이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 정성을 들여 자리를 편 시간이다.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나의 메시아는 오직 거친 시간이기 때문에 다시 힘겹게 오크통을 바라본다. 혹시 모르니까. 혹시 나의 거친 정성이 물을 포도주로 바꿀지도 모르므로. 고통과 실망으로 얼룩진 얼굴을 오크통 속 물로 시원하게 닦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