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이모저모

짤막하게 모아둔 글

by 사공사칠

20세기 클래식 작곡가 윤이상은 고국에서 추방 당했지만 세계가 품은 음악가였다. 뮌헨 올림픽에 작품을 올린 유일한 작곡가였고 작품 이름은 심청이다. 먼 독일 땅에서 눈을 감기까지 그는 작품 속에 본인이 태어난 통영의 소리를 잊지 않고 담았다. 94년에 남긴 육성으로 그는 충무(통영)의 파도와 바람소리가 자신을 키웠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거친 파도의 부딪힘과 바람의 몰아침이 살아 있다.


윤이상 - 기타, 타악기, 목소리를 위한 가곡 (1972)


기타는 어떤 노래를 할 수 있는 악기인가? 손이 타악기를 칠 때 어떤 노래가 울리나? 목소리는 어떤 소리인가? 이 곡을 들으며 내가 이 세 소리를 안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생각한다. 기타, 타악기, 그리고 목소리가 도저히 어떤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인지 알 턱이 없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내야만 하는 소리의 원형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세 소리를 깊고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몇몇 사람들 덕분에 기타, 타악기와 목소리가 부를 수 있는 노래의 가능성이 넓어졌다.


윤이상 - 예악 (1966)


20세기 클래식 음악, 특히 음렬주의(serialism)나 강한 무조성(atonality)에 기반을 둔 곡을 들을 때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곡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다른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참고 끝까지 듣기 위해서다. 이 곡을 들을 때도 마치 내가 모르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낀 기분이 들었다. 두 귀로 들어오지만 도저히 그것을 해석할 단어와 문법이 없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말에 둘러 쌓여 있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버티기다.


가만히 앉아 이해되지 않는 언어를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에너지의 흐름이 읽힌다. 귀에 들어 오는 단어들은 알 수 없어도 말의 호흡, 어조, 방점 등이 만든 에너지를 느낀다. 그가 쓴 예악은 종묘 제례악 등에서 읽을 수 있는 한국적인 시간의 흐름을 담았다. 아주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는 시간. 고수가 품새를 하기 전 천천히 기를 가다듬는 시간 같다. 그러다가 찰나에 영들과 마주했을 때 몰아치는 감정. 조상신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 사이를 맴도는 여운까지. 나는 아직 이 곡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악기들의 대화에 둘러 쌓여 거대한 에너지는 느낀다.


윤이상 - Violin Concerto No. 3 (1992)


20세기 클래식 음악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어떠한 해석 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들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음악에 관해 어제까지 내가 알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기분이다. 주선율인 바이올린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따라가기도 벅차다. 예측하지 못한 소리들이 나올 때마다 내가 가진 선입견에 금이 가는 기분이 든다.


우리말로 작곡가라 번역하는 composer를 들여다 본다. ‘함께’, ‘조합’의 뉘앙스를 가진 com과 ‘위치’, ‘자리’라는 뉘앙스를 지닌 -pos-, 사람을 의미하는 -er이 더해져, 어떤 것들의 위치를 조합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이 보인다.


서구권에서 작곡가는 여러 소리의 위치를 잡아 하나의 실로 꿰매는 사람이다. 위치를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잡을지 정하는 나만의 규칙이 필요하다. 작곡가는 곡 안에서 이 세계관에 필요한 규칙을 만든다. 20세기 클래식 음악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선 작곡가가 짜놓은 규칙이 무엇인지 유추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꼬인 실타래 사이가 듬성 듬성하다고 해서 서로를 연결하는 꼬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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